[메아리]용혜인 논란이 드러낸 박정희 정치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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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용혜인 의원의 장관 후보자 지명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다. 그러나 이를 한 의원의 선택이나 한 정당의 이해관계로만 바라보면 본질을 놓친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행정부를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이 행정부의 장관까지 맡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법률과 예산을 심의하고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한다. 반면 장관은 대통령을 보좌해 정책을 집행하고 국회의 감시를 받는다. 두 직책을 한 사람이 동시에 맡는 것은 선수에게 심판의 호루라기까지 쥐여주는 것과 같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뛰어야 할 때와 판정해야 할 때를 온전히 구분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장관이 된 뒤에도 의원의 권한이 정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관 겸직 의원은 본회의에서 법률안과 예산안에 표를 던지고 법안을 발의하며, 의결정족수에도 포함된다. 상임위원직도 자동으로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법상 ‘사임할 수 있을’ 뿐이다. 국무회의에서 정부 정책을 결정한 사람이 국회에서는 그 정책을 뒷받침할 법률과 예산에 다시 한 표를 행사하는 구조다.



현행 국회법은 국회의원이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을 겸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한다. 그 직접적인 출발점은 1969년 박정희 정권의 삼선개헌이다. 1962년 헌법은 국회의원이 국무총리·국무위원을 겸하지 못하도록 명시했지만, 삼선개헌 때 이 금지 조항이 삭제되고 겸직 범위를 법률로 정하도록 바뀌었다.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을 고치면서 국회의 견제 장치까지 느슨하게 만든 것이다.



영국·독일·일본에서도 의원이 장관을 맡는다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의회 다수파가 정부를 구성하고 의회가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 국가다. 대통령과 국회를 각각 선출하는 우리와 권력구조가 다르다. 대표적인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은 헌법 제1조 제6절 제2항에서 연방의원과 행정부 공직의 겸직을 금지한다. 프랑스도 헌법 제23조에 따라 정부 구성원과 의원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으며, 정부에 참여하는 동안 대리 의원이 의정활동을 맡는다.



권력분립의 원칙에 맞게 의원이 장관이 되면 의원직을 내려놓도록 해야 한다. 당장 전면 금지가 어렵다면 장관 재임 중 표결권과 법안 발의권, 상임위원회 활동을 정지하고 대리 의원이 직무를 수행하는 방안이라도 검토해야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연결한다는 명분으로 두 기관의 경계까지 지워서는 안 된다.



박정희 시대가 남긴 또 하나의 높은 장벽은 국회 교섭단체 20석 요건이다. 교섭단체 제도는 1949년 도입됐지만, 1963년 10석으로 낮아졌던 기준을 다시 20석으로 높인 것은 1973년 유신체제였다. 그 문턱이 반세기가 넘도록 그대로다.



300석 국회에서 20석은 전체 의석의 6.7%다. 유럽의 여러 의회가 이보다 낮은 기준으로 원내단체를 인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높다. 국민의 선택으로 국회에 진입한 정당도 20석에 미달하면 의사일정 협의와 상임위원회 배분, 대표연설과 국고보조금 등에서 불리하다. 국회라는 식탁에 의자는 300개지만, 중요한 메뉴를 결정하는 자리는 사실상 두 개뿐인 셈이다.



교섭단체 요건을 5석 또는 10석으로 낮춰야 한다. 난립으로 국회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는 운영 규칙으로 조정하면 된다. 효율성을 이유로 국민이 선택한 다양한 목소리를 협상의 문밖에 세워두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교섭단체는 거대 정당의 특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민의를 조정하는 장치여야 한다.



지방의회 교섭단체도 함께 손봐야 한다. 2023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교섭단체를 둘 근거를 마련했지만, 구성과 운영을 조례에 맡겼을 뿐 구체적인 권한과 지원은 명시하지 않았다. 간판은 달았지만 안에서 일할 도구는 마련하지 않은 셈이다. 의사일정 협의와 상임위원회 구성, 대표연설과 정책협의에 참여할 권한을 법률로 보장하고 정책 인력과 재정 지원의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소수정당과 무소속 의원의 발언권도 보호해 또 다른 독점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정치는 군사정권을 끝내고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았다. 그러나 국회의 견제를 약화한 장관 겸직과 소수정당을 협상에서 밀어내는 20석의 장벽은 그대로 남아 있다. 민주화 이후 거대 양당은 정권을 주고받으면서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낡은 규칙을 바꾸지 않았다. 운영자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정치의 운영체제는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버전인 셈이다.



민주주의는 통치자의 이름만 바꾸는 제도가 아니다. 권력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며, 작지만 다양한 목소리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제도다. 국회의원과 장관의 겸직을 금지하고, 국회 교섭단체의 문턱을 낮추며, 지방의회 교섭단체의 권한과 책임을 법률로 보장해야 한다. 이제는 통치자만 바꾸는 민주주의를 넘어, 박정희 시대가 그어놓은 정치의 경계선까지 바꿔야 한다.



/임형택 Like익산포럼 대표, 조국혁신당 전북도당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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