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9일 전주 도심의 한 석류나무에 붉게 익어가는 석류가 매달려 있다. 한낮의 더위는 여전하지만 석류는 가을을 재촉하듯 붉은빛을 더해가고 있다. 전통 문화와 민화에서 석류(石榴)는 자손이 번성하고 아들을 많이 낳는 '다자(多子)'와 '다남(多男)'을 상징한다. 주머니처럼 생긴 붉은 껍질 속에 수많은 씨앗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이 마치 많은 자손을 품고 있는 형상과 닮았기 때문이다.
민화인 백자도(百子圖)나 석류도(石榴圖)는 집안에 자식 복이 가득하고 대가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침실이나 안방을 장식하는 용도로 자주 쓰였다.
우리에겐 삼다(三多) 사상이 있다. 전통적으로 큰 복을 뜻하는 세 가지 식물인 '삼다(三多)' 중 하나로 꼽힌다. 복숭아(다수·多壽: 장수), 불수감(다복·多福: 복)과 함께 석류(다자·多子: 자손)가 더해져 집안의 길상을 기원했다. 의남다자(宜男多子), 원추리꽃과 석류를 함께 그린 그림은 '아들을 많이 낳아 가문이 번성한다'는 뚜렷한 주술적, 축복적 의미를 지녔다.
이처럼 석류는 단순한 과일을 넘어 전통 예술과 생활용품, 혼례 의복의 문양(석류문) 등으로 널리 사용되며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는 핵심적인 길상 상징물로 여졌다.
민화에서 까치와 석류는 기쁜 소식과 풍요로운 다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길상(吉祥)의 소재이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뜻하는 길조로 '희(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석류에 까치 한 마리'는 "기쁜 소식과 함께 귀한 자손을 얻는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유당 김희순(1886-1968) 화백의 화조도 10폭 병풍에 석류와 까치 한마리가 보였다. 나무 기둥과 가지는 거칠고 힘 있는 수묵으로 표현된 반면, 탐스럽게 익은 주홍빛 석류 열매와 깃털이 대비되는 까치의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정겹게 처리되어 화면 전체에 따뜻한 생동감을 부여한다.
하반영(1918~2015) 화백은 유화(서양화)뿐만 아니라 지본채색(한국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석류를 표현했다. 서양식 정물화 구도 속에 한국적인 정서와 색채를 녹여낸 것이 특징이다. 그가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군산시에 기증한 대표 유물 중 하나가 바로 '바구니에 있는 석류'이다.
석류의 붉은 빛과 갈라진 틈 사이로 보이는 촘촘한 알갱이를 특유의 대담하고 힘 있는 필치나 강렬한 색감으로 묘사,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가 최후까지 탐구하고 표현한 빛의 세계, 마하의 세계, 생성의 세계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뒤에서 "종근아 잘 있냐" 라는 그의 말이 이제사 떠오름은 왜 일까./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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