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가장 유명한 금동신발은 2009년 고창 봉덕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해당 고분에서는 금동신발 한 켤레와 더불어 금귀고리 두 쌍, 대나무잎 모양 머리 장식 등의 장신구, 중국 청자, 일본계 토기, 큰 칼 및 화살통 등 각종 무기류가 발견되었다. 살펴보면 금동신발의 바닥과 옆면에는 앞서 소개한 후지노키 고분 말안장과 마찬가지로 육각형 문양 안으로 용, 봉황, 인면조, 외수 등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의 경우 디자인적으로 백제금동대향로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들과 무척 닮아 있어 흥미롭다.
물론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은 5세기에 제작된 만큼 백제금동대향로와 최소 100여 년의 격차는 있지만 공유하는 디자인이 그만큼 유사하다는 의미.하지만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에는 백제금동대향로와 달리 원숭이, 악어, 사자, 코끼리 등은 등장하지 않기에 5세기만 하더라도 이들은 그다지 주목받은 동물이 아니었나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시대의 흐름마다 주목받는 동물 디자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에는 원숭이, 악어, 사자, 코끼리처럼 6세기 이후 불교 예술이 크게 성행하며 도입된 동물 디자인부터 백제가 이미 4~5세기이래 인기리에 선보이던 용, 봉황, 인면조, 외수 같은 신비한 동물까지 함께 등장하고 있다. 이로서 기존의 장식 디자인에다 6세기 이후 도입된 새로운 디자인을 더함으로써 더욱 알찬 세계관을 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백제의 세계관이 기존의 동아시아를 넘어 인도, 동남아 지역까지 크게 넓어졌다.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제금동대향로(지은이 황윤, 펴낸 곳 책읽는고양이)’는 1993년 발굴 직후 남다른 주목과 함께 높은 가치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로 제작되었는지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은 백제금동대향로의 비밀을 도교, 불교, 유교의 측면에서 하나하나 밝혀나가는 고고학 여행기이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세계관에서부터 19명의 인물과 여러 동물의 의미에 이르기까지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한 유·무형적인 해석을 총망라한다. 여기에 저자는 백제 왕실 이야기 및 당대의 대외 교류 역량과 문화, 예술, 학문, 종교 등 작품의 탄생 배경이 되는 역사적 통찰을 더하여 입체적인 백제금동대향로 감상이 될 수 있도록 이끈다.
높이 약 62㎝ 무게 약 12㎏, 아래에는 커다란 용이 있으며 용이 물고 있는 원통형 세계에는 산과 물이 흐르고 수많은 동물과 사람이 있는 데다 가장 윗부분에는 날개를 편 듯이 멋진 포즈를 하고 있는 새가 여의주를 품고 있는 백제금동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 맨 위에는 금시조가 여의주를 품고 있으며, 가장 아래에 위치한 용은 팔 하나를 하늘을 향해 뻗고 있다. 금시조가 떨어뜨린 여의주를 잡으려는 듯. 저자는 이 장면이 《경률이상》 중 금시조 정음의 최후를 묘사한 것이라 밝히며, 이 모습을 근거로 백제금동대향로의 주인을 추측해낸다. 《경률이상》에 따르면 정음의 심장, 즉 여의주를 얻는 존재는 전륜성왕이다. 전륜성왕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하는 천하를 무력이 아닌 덕으로 통치하는 불교의 이상적인 세속 군주를 이른다.
전륜성왕을 위한 보물인 여의주를 상징하여 특별히 만들어진 작품인 백제금동대향로. 저자는 향로의 주인은 곧 전륜성왕이자 역사상 실존하는 백제의 왕 중 한 명일 것이라고 밝힌다. 한편 위덕왕 시절 능산리에 사찰이 창건될 당시만 하더라도 성왕의 명복을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기에 백제금동대향로 또한 그 누구보다 성왕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을 것이라며 추측의 폭을 좁힌다. 금시조가 여의주를 품고, 용이 팔 하나를 들고 있는 까닭은. 과연 누구를 위한 향로였을까,/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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