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김제 부용사 미륵탱'은 예수, 무함마드, 마리아, 공자, 맹자, 노자 등이 그려져 있다. 고경스님은 "여태껏 이런 시도는 본 적 없다"며 "혼란한 전쟁 통에 이걸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송광사성보박물관장 고경스님이 7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전집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일섭스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선시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예술적 흐름을 받아들여 한국 근현대 불교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금용당(金蓉堂) 일섭(日燮, 1900~1975) 스님의 삶과 예술 세계를 총망라한 '한국 근현대 불교미술의 비수갈마: 금용 일섭'(전 6권)이 출간됐다. 책 제목에서 비수갈마는 ‘제석천의 신하로 여러 가지 도구나 고예품을 만들고 건축을 맡아보는 천신’을 뜻하는 용어로 ‘불모(佛母)’인 금용 일섭스님을 높여 부른 명칭이다.
2012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진행한 전시를 통해 인연이 닿게 된 김제 부용사 지관스님이 2014년 일섭스님의 유품 166건 316점을 송광사성보박물관에 기탁, 전집 집필이 시작됐다.
불교문화유산연구소, 성보문화유산연구소 등 여러 기관에서 그간의 자료를 건네줬고, 100회 넘는 답사가 이뤄졌다. 일섭스님이 직접 남긴 기록일지 '일보'에 기록된 불상 2,788점 중 2607점을, 불화는 856점 중 383점을 확인했다.
신간은 모두 6권(약 3000페이지)으로 스님이 직접 남긴 연보, 연보 주석, 불상, 불화, 불화 초본, 단청과 벽화로 구성됐다. 10여년 동안 사찰 250여 곳에서 모은 불상 95건 2607점, 불화 383점 등이 실렸다.
서울 조계사, 영변 보현사, 개성 안화사, 김제 금산사, 경주 불국사 등 전국에서 배우며 작품을 남긴 일섭스님의 흔적이 되살아난 것이다.
일섭 스님은 불화에만 머무는 화승이 아니었다. 조계산파 연봉봉린 문하에서 그림을 시작해 마곡사파 보응문성에게 사사하고 고산축연·춘화만총 등 당대 이름난 화승들을 찾아 배웠다. 불화와 불상 조성은 물론 개금, 단청, 문화유산 보수까지 불교미술의 여러 영역을 두루 섭렵했다.
1935년 김제 금산사 미륵불 조성 경쟁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고, 1938년에는 태고사(현재 조계사)의 단청과 후불탱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1972년에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으로 지정됐다.
스님의 활동기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전후 복구가 이어지는 격동의 한복판이었다. 부산·목포·인천 등 개항장을 통해 일본 사찰과 일본식 불상·불화가 들어오던 시기였지만, 연구진은 일섭 스님의 불상과 불화가 당시 유입된 일본 불교미술과 달리 한국 전통의 색채와 필선을 굳건히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변화를 배척한 것도 아니었다. 일본과 중국의 화집, 도안집을 수집했고 서양 그림까지 살펴보며 새로운 표현을 연구했다. 동물과 식물을 그릴 때도 상상에만 기대지 않고 사진과 그림 자료를 활용해 사실감을 높였다.
그는 1938년 김제 부용사에 ‘불상불화전문연구성예원’을 세워 전문 화원을 길렀다. 이곳에서 출발한 예술적 계보는 여러 세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약 280명의 문도로 이어졌다.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 부용사는 미륵부처가 영험한 것으로 알려져 약사여래불상 앞에 엎드려 불공을 드리면 반드시 효과를 본다는 신기한 전설이 전한다. 단청 기능 보유자였던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승려 김일섭(金日燮)이 1936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에는 주존으로 아미타불을 모시고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모셨다. 이 아미타불은 김일섭이 손수 제작한 것이며, 좌우 협시불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도 석고상으로 만들어 불교미술전람회에 출품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전남 화순출신으로 불상·불화·단청 등을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근대 불교미술의 선구자이다. 그는 1935년 김제 금산사 미륵불 조성에 참여하고 1938년 조선불교 총본산 태고사 대웅전(현 서울 조계사) 불화를 조성하는 등 30대 중반에 대규모 불사를 주도하는 반열에 올랐다. 그의제자 송복동은 고창 선운사 사천왕상을 조각했고, 김제 용봉사 은행목조 등신대좌불, 해남 대흥사, 경북 묘관음사 목불도 그가 직접 깎아 만든 불상이다. 또 해인사 길상암 독성, 산신 탱화, 광주 관음사 후불탱화, 부안 내소사의 후불 탱화 등도 그의 작품이다. 김일섭은 탱화 불화, 불상, 단청 350여 점을 남겼다
그는 근세 대불모(大佛母)인 김보응(金普應) 화사(畵師)를 찾아 불화를 배웠다. 불교미술의 불모지나 다름 없는 전북 김제에 부용사를 건립한 후 성예원(聖藝院)을 개설, 불상, 불화(佛畵) 전문 연구 기관으로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그의 제자는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 제48호 임석정을 비롯, 전북도 문화재 신언수, 전남도 송복동(구봉스님), 그리고 김우일, 남인식, 박상순, 신병철, 유봉래, 김지죽, 박준수, 신언식, 이충열, 박유종, 서광성, 조정우, 임동용, 이철우, 이수철, 이정오, 우국정, 이명열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나왔다는 이용엽선생의 설명이다.
선운사 사천왕상은 송복동(구봉스님)의 대표작이다.
40∼50대에 일섭은 높이 4m 이상의 대형 후불도(後佛圖)를 그리거나 한 사찰의 불상·불화·단청을 모두 조성하는 등 대규모 불사를 행하는 종합 예술가의 면모를 보이면서 1971년 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에 지정, 근대 불교미술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고경 스님이 전한 일화에서는 스님의 따뜻한 교육관도 엿볼 수 있다. 불사를 마치고 받은 대가를 제자들에게 나눌 때, 오래 배운 숙련자와 갓 들어온 제자에게 똑같이 나눠줬다는 것이다. 숙련된 제자들이 불만을 표시하자 일섭 스님은 "숙련자는 이미 쉽게 그릴 수 있지만, 신입은 땀 흘려 노력해도 같은 성과를 내기 어려우니 그 노력까지 기려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제자 개개인의 장점을 찾아 특정 분야를 더욱 연마하도록 이끌었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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