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천지의 이치를 밝히고 사람의 길을 묻다

이종엽 '포암산인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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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포암산인 산문집은(지은이 포암산인, 엮은이 이상찬, 펴낸 곳 지운북스)'은 유학자 포암산인(圃巖散人) 이종엽(1890~1968, 李鍾燁) 선생이 남긴 '포암산인 사고(圃巖散人私稿 상·하)를 정리, 엮은 문집이다.

앞서 간행된 『포암산인 한시집』에 이은 두 번째 저작으로, 『포암산인 산문집』은 단순히 한 유학자의 유고(遺稿)를 엮은 책이 아니다. 근현대의 격변기를 살아간 향촌 유학자 포암산인(圃巖散人) 이종엽(李鍾燁, 1890~1968) 선생의 학문 세계와 교육 이념, 그리고 실천적 선비정신을 오늘의 독자에게 전하는 뜻깊은 문집이다.

선생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이라는 격변의 시대에도 향리에 운림정사(雲林精舍)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고 성리학을 강론하며 평생 학문과 교육에 힘썼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던 시대에도 학문을 삶의 근본으로 삼고, 교육을 통해 사람을 바르게 세우고자 했던 그의 정신은 이 산문집 전편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성리학을 단순한 이론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천명도서(天命圖敍)」와 「이기화물도서(理氣化物圖敍)」를 비롯한 여러 도설에서는 천지와 인간, 이(理)와 기(氣), 성(性)과 정(情)의 관계를 깊이 탐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탐구는 관념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수양과 올바른 삶, 나아가 사회의 질서와 교육의 문제로 이어진다.

'풍악(楓岳)과 용성(龍城) 사이에 자리 잡은 큰 마을이 곧 운교(雲橋) 마을이다. 사방의 산 가운데 풍악과 용성보다 높은 산은 없고, 마을의 번화함 또한 운교보다 나은 곳이 없다.일상생활이 산과 맞닿아 있을 듯하지만, 산은 멀리 있고 들판은 넓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들판이 넓은 것은 알아도 산이 있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내가 곡성(谷城)에서 선군(先君)¹을 모시며 가업을 돌보다가, 돌아가신 맏형의 주선으로 비로소 이곳에 정착하였으니, 이미 40여 년이 흘렀다. 나는 만년에 한적한 곳을 찾아 몸을 의탁하고자, 집 뒤 움푹한 곳에 한 채의 설당(雪堂)을 짓고, 중간에 나의 유예실(游藝室)을 만들고, 동·서(東·西)에는 자식과 조카들이 학업을 익히는 방을 만들었다.집터가 마을 뒤편에 있어 은거지처럼 조용하고, 산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어 실제로는 들판 곁에 있지만 마치 산속에 있는 듯하다. 시냇물과 산은 창창(蒼蒼)하여 경개(景槪)를 이루고, 대숲(竹林)은 청청(靑靑)하여 울타리가 되었다.뜰 가운데에는 두 그루의 살구나무가 있고, 동서에는 국화가 무성하며, 뜰가 동서에는 향기로운 난초가 피어 있다. 두 섬돌 사이에는 한 그루 외로운 소나무가 서 있고, 뜰 앞[堂前]에는 네모난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심고 물고기를 기르고 있으며, 집 뒤에는 굽이진 못[曲池]을 만들어 손을 씻고 발을 씻을 수 있게 하였다 [洗手而又濯足]. 이에 운교(雲橋)의 '운(雲)'과 죽림(竹林)의 '림(林)'을 취하여 '운림정사(雲林精舍)'라 편액하고 이어 시를 지었다.간혹 찾아오는 사람들 가운데 이를 찬미하는 이도 있기에, 나는 말하기를, "만물의 폐흥(廢興)과 성훼(成毁)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예전에 이곳은 거친 풀이 무성한 들판으로, 서리와 이슬이 흩날리고 뱀과 독사들이 숨어 다니던 곳에 어찌 일찍이 정사(精舍)가 세워질 줄 알았겠는가? 흥폐와 성훼는 끝없이 서로 되풀이되는 것이니, 이 정사가 다시 거친 풀이 무성한 들판으로 돌아갈지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대의 말은 찬사가 아니라 실은 조롱인 것이다." 이에 그 뜻을 기록으로 남긴다.('운림정사기' 전문)

「운림정사문답(雲林精舍問答)」에서는 유교적 정치의 이상과 국가 운영의 원리를 문답 형식으로 풀어내며 백성의 생업과 재산, 토지제도, 교육과 인재 등용 등에 관한 생각을 펼친다. 「골동설(汩董說)」에서는 학문과 덕행의 요체를 조목조목 밝히고, 「자경사(自警辭)」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는 선비의 자세를 스스로 경계한다. 여러 기문(記文)과 서간문(書簡文)에는 학문적 교유와 인간적인 면모,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이 담겨 있다. 또한 제생(諸生)에게 주는 교훈에서는 후학을 향한 간절한 마음과 교육에 대한 신념을 엿볼 수 있어, 스승이자 교육자로서의 모습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오늘날 성리학은 흔히 어렵고 현실과 거리가 먼 학문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포암 선생의 관심이 추상적인 철학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배움은 어떻게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근본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그의 글 곳곳에 살아 있다.

천지의 이치를 밝히는 일과 자신의 마음을 닦는 일, 그리고 사람을 가르치고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운림정사는 포암 선생의 학문과 삶을 상징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곳은 단순한 은거처가 아니라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치며 사람들과 뜻을 나누던 배움의 공간이었다. 그의 산문에는 학문을 책 속의 지식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사람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생각이 담겨 있다.

이 책이 더욱 뜻깊은 것은 오랫동안 육필원고로 남아 있던 선생의 글을 포암산인의 손자인 엮은이가 유고와 자료를 수습하고 정리하여 오늘의 독자에게 전한다는 데 있다.

『포암산인 산문집』은 한 사람의 문집을 넘어 근현대 향촌 유학의 실제 모습과 성리학이 한 선비의 삶 속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실천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성리학의 이론을 탐구하면서도 후학을 가르치고, 학문을 나누며, 가정과 공동체의 질서를 돌아보고, 선대의 삶을 기록했던 포암 선생의 모습은 전통 학문이 결코 박제된 지식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인간과 학문의 근본을 묻는 목소리는 더욱 소중하다. 『포암산인 산문집』은 천지의 이치를 탐구하면서 끝내 사람의 길을 밝히고자 했던 한 선비의 사유와 삶을 오늘의 독자에게 전하는 기록이다. 선생의 글에 담긴 학문과 교육, 수양과 실천의 정신이 오늘날 전통 학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엮은이는 서문에서 “포암산인은 필자의 조부이자 스승이시다. 조부께서 평생 지키고자 했던 학문과 선비정신은 오늘의 나를 이루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늦게나마 선생의 유고를 정리하여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오랫동안 마음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이제야 내려놓는다"고 했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글을 번역하고 책으로 묶는 작업을 넘어, 선대의 학문과 정신을 다시 살피고 그 가치를 후대에 전하려는 오랜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오랜 기억과 존경, 그리고 선대의 학문을 후대에 전하고자 한 마음에서 비롯된 결실이기도 하다.

선생의 자(字)는 광섭(光燮)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고종 갑신년(甲申, 1890) 정월 보름날, 구한말(1876~1910)의 격변기에 국당 문효공 천의 21세손으로, 부친 규상(圭祥)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출세의 명리(名利)를 버리고 향리에 인재 양성에 뜻을 두어 남원에 '운림정사(雲林精舍)'를 설립, 이곳에서 다수의 동몽(童蒙) 지도서를 편찬, 지역 교육에 전념했으며, 수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또, 당대 유림의 학자들과 널리 교유하며 성리학(性理學)을 강론하고 시문(詩文)을 즐겼으며,'포암산인 사고(圃巖散人私稿)' 상·하권을 남겼다.

선생의 깊은 학문과 강직한 선비정신은 많은 이들의 추앙과 경모(敬慕)를 받아, 수차례 타지에 초빙되어 가는 곳마다 '장례정사(藏禮精舍)', '수장정사(壽牆精舍)', '예곡정사(禮谷精舍)'라 이름 짖고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당대의 대표적 유학자로서 오직 학문에 정진하며 생활 속에서 선비정신을 실천하셨던 선생은 1968년(무신 戊申) 윤 7월 1일, 향년 78세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일생을 마치고 영면에 들었다.

엮은이 이상찬은 포암산인의 손자로 전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예술문화연구소장, 예술대학장을 역임했다.

15회의 개인전과 500여 회의 국내˙외 초대 및 단체전에 참여했다. 일본오원미술연맹 위원, 신 일본미술원 위원, 아트포럼인터내셔널 회장, 양평군립미술관장을 역임,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현재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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