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불화의 뛰어난 완성도 보여준 의겸 스님

국가유산청, '순천 송광사 오십삼불회도' 보물 지정 예고 부안 개암사 영산회괘불탱(국보), 개암사 괘불 초본(보물), 무주 안국사 영산회괘불탱(보물)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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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국가유산청은 지난 3일 1725년 의겸 스님이 주도해 그려진 '순천 송광사 오십삼불회도'는 완벽한 구도를 갖춘 희귀한 오십삼불화로, 조선 후기 불화의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 까닭에 보물로 지정예고했다.

'순천 송광사 오십삼불회도’는 오십삼불 신앙을 불화로 구현한 사례로, 그 구성이 완전히 남아 있다. 오십삼불 신앙은 <관약왕약상이보살경(觀藥王藥上二菩薩經)>에 의거해 이 경전에 수록된 오십삼불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하면 시방의 부처를 만나고 사중오역(四重五逆)의 죄가 사라진다고 믿는 신앙이다.

복장유물을 넣는 주머니인 복장낭 속 회향발원문을 통해 수화승 의겸(義謙)을 중심으로 한 26명의 제작 화승, 1725년이라는 제작 시기가 명확히 밝혀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의겸 불화 특유의 엄정한 얼굴과 균형감 있는 신체 표현이 돋보이며, 부처의 이름을 함께 적어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신앙적 의미와 완성도를 높였다.

이 성보는 오십삼불회도의 희귀한 제작 사례로 시대를 대표하는 수화승 의겸 특유의 화풍이 잘 반영된 불화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다.

1592년 시작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은 조선의 국토를 초토화 시켰고, 사찰 역시 비켜가지 못했다. 많은 사찰이 전화(戰火)의 피해를 입었고, 전각과 불상, 불화들이 소실됐다. 전쟁 이후 불교계는 전국적인 불사를 추진하며 산문을 일으켜 세웠다. 당시 불사를 담당한 주역들이 화승(畵僧), 불모(佛母·조각승) 등 승려 장인(僧匠)들이다.

의겸 스님(생몰 미상)은 1713년부터 1757년까지 40여 년간 호남과 지리산 일원을 중심으로 활동한 18세기 전반 조계산문(曹溪山門)의 대표적인 화승이다.

부안 개암사 영산회괘불탱(국보)은 의겸 스님이 1749년에 주도하여 조성한 대형 의식용 불화(괘불)이다. 높이가 13m를 넘는 압도적인 크기로, 강렬한 색채 대비와 화려한 옷의 문양 등 의겸 스님 노숙기 화풍의 정수를 보여준다.

개암사에 보관되어 오다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개암사 괘불 초본(보물)은 조선 후기 괘불 중 밑그림이 온전하게 함께 발견된 유일한 사례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의겸 스님은 이 초본을 활용해 영남과 호남의 다른 사찰(청곡사, 운흥사, 다보사 등) 괘불을 그렸다.

무주 안국사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7호)은 의겸 스님이 참여하여 조성한 또 하나의 전북 지역 대표 괘불디다. 조선 후기 의식집의 불보살 호명 구조와 불교 의례의 시각적 결합을 완벽하게 완결 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겸 스님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남원의 실상사를 중심으로 전라도 불화 제작 역사의 큰 맥을 형성했다. 실상사를 비롯한 지리산 권역 사찰들에 다양한 영산회상도, 팔상도, 감로왕도 등을 남겼다.

국가유산청은 '불정심다라니경', 평창 상원사 석가여래삼존좌상, 공주 마곡사 동종 등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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