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백과 사진평론가의 손편지, 처음 공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무주군립최북미술관에서 근현대 미술인들의 편지 소개 '이만, 총총: 미술인의 편지’ 권병렬화백이 2023년 6월 8일 그린 마지막 스케치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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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전북출신 고 권병렬(1924~2023)화백과 최연하 사진평론가의 손편지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2003년 권화백이 막내딸 권혁주에게 보낸 편지와 2007년 안상미가 최연하에게 보낸 편지가 바로 그것이다.

다음은 권화백이 보낸 아버지가 막내딸에게 전하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조언이 담긴 글이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 ! 감언(甘言)을 따라가면 함정과 후회가 따르는 일이 많더라. 고언(苦言)은 귀에 거스리는것같으되 음미 할수록 진언(眞言)과 정언(正言)이 많더라. 이권(利權)과 행운(幸運)이 손 쉽게 오거든 일단 前後左右를 잘 살피자.(함정이 있을 수 있다) 온실에서 갓 나온 나약한 처지이니 이 험악(險惡)한 사회– 갓 태어난 동물의 새끼의 본능처럼 두루두루 잘살피고 또 살피며 가자꾸나!.영룬·명지를 위해서라도. 아빠가 사랑하는 막내 딸에게’

다음은 안상미가 최연하에게 보낸 편지다.

“최연하님,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지적인 감성과 날카로운 명안으로삶과 예술의 흔적을 더욱 다져가는작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2004. 데비 한D. Han‘

특히 권병렬화백이 2023년 6월 8일에 그린 마지막 스케치도 공개된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24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무주군립최북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인들의 친필 편지를 소개하는 전시 '이만, 총총: 미술인의 편지'를 갖는다.

이번 전시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개관 이후 기증받고 수집해온 미술인들의 편지, 봉투, 엽서 등을 중심으로 구성한 지역 순회전이다.

1910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 근현대 미술인 101명이 남긴 자료 136점을 바탕으로, 무주·전북과 부산 지역 미술인에 대한 조사를 더해 새로운 편지 자료와 관련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편지는 단순한 사적 안부를 넘어 미술가들의 관계와 활동, 당대의 문화적 풍경을 전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김환기가 군에 입대한 제자 신종섭에게 보낸 격려의 편지, 해외에서 활동하던 이우환이 선배 이세득에게 고국에서의 관심에 감사를 전한 편지 등에는 미술인들이 나눈 존경과 격려, 고마움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시 제목의 ‘총총(悤悤)’은 과거 편지 끝에 작별 인사로 쓰이던 표현이다. 동시에 별이 촘촘히 빛나는 모습을 뜻하는 순우리말 ‘총총’의 의미를 겹쳐, 한 사람의 일상적인 기록이 한국 미술사의 여러 장면을 비추는 자료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만, 총총: 미술인의 편지'는 미술사의 거대한 흐름을 작품과 전시 기록만이 아니라, 작가들이 직접 남긴 사적인 문장과 손글씨를 통해 다시 읽게 하는 전시다. 편지 속 안부와 감사, 격려와 부탁은 한 시대 미술인들의 삶과 관계를 생생하게 드러내며,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보다 인간적인 기록으로 바라보게 한다.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 ‘시대를 읊는 글월’에서는 1910년 '신항교가 오재영에게 보낸 편지봉투'부터 2014년 '박서보가 김달진에게 보낸 자료 봉투'까지 편지와 엽서, 우표와 필체의 변화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살핀다. 근대 서간문 교육과 문화를 보여주는 '조선어독본'도 함께 소개된다.

2부 ‘인연을 띄우는 서신’에서는 미술인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백남준이 유준상에게 보낸 연하장'과 '천경자가 유준상에게 보낸 연하장'에는 직접 그린 드로잉이 남아 있으며, 김형구가 아내 신숙자에게 보낸 엽서, 김기창이 제자들에게 보낸 엽서 등을 통해 가족과 동료,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평론가 오광수가 조각가 김청정에게 보낸 편지처럼 오랜 시간 이어진 서신도 함께 공개된다.



3부 ‘편지 속 발자취, 총총’에서는 편지를 작품과 평론, 기사 등 다른 기록과 연결해 미술인의 활동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백남준이 '공간' 편집부에 친필 원고와 함께 보낸 편지와 실제 게재 지면을 나란히 선보이며, 서상환과 옥영식이 주고받은 편지도 관련 평론, 사진, 기사와 함께 소개한다.

이번 순회전에서는 권병렬, 최연하, 김수길 등 전북과 부산 지역 미술인 8명의 편지 자료도 새롭게 공개된다.

익산 출신 청곡 권병렬은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대표적인 한국화가다.

권병렬의 호인 ‘청곡(靑谷)’은 국문학자 가람 이병기(李秉岐, 1909-1968)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하사받은 것으로, ‘푸른 계곡처럼 푸르게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평생 타인에 대한 배려와 청렴한 자세, 이타적 성품을 지녔던 권병렬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독서, 운동을 바탕으로 100세에 이르기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2023년 3월 KBS전주방송총국 갤러리에서 전북 지역 최초의 100세 기념전인 ‘청곡 권병렬 100세 기념전 – 기운생동’을 개최, 당해 제작한 신작 10여 점을 포함한 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원숙한 필력을 입증했다. 2023년 6월 10일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임종 직전 8일 호스피스 병동에서 손녀와 딸을 위해 자전거와 길을 소재로 한 마지막 스케치를 남기는 등 삶의 끝자리까지 예술과 가족에 대한 애정을 다했다.

이 전시엔 권병렬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 13여 점과 관련 자료를 선보인다.

최연하(崔演河, 1974- )는 장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전주로 이주해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전국 고교생 연합회 회장을 맡아 대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 모임에 참여했는데, 당시 노태우 정권의 고교생 의식화 문제로 안기부 보안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등 시대의 아픔을 직접 경험했다. 광주대학교 사진학과에 차석으로 입학해 4년 장학금을 받으며 사진 기술과 메커니즘을 익혔으며, 4학년 때 참여한 광주비엔날레 인턴 경험과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의 작품에서 받은 감명은 본격적인 전시기획자와 비평가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최연하 소장 서신들은 2003년부터 2011년 무렵까지 전시기획자이자 미술비평가, 큐레이터로 활동해 온 최연하의 인적 관계와 정서적 배경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이 서신들은 단순한 안부 인사를 넘어 청년 시절 지역에서 맺은 인연부터 문화예술 현장의 동료의식, 그리고 작가와 비평가 사이의 깊은 신뢰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교류 모습을 담고 있다.

2007년 안상미가 호주 시드니에서 보낸 엽서는 환경재단 큐레이터와 전시 코디네이터로 함께 일했던 관계를 보여준다. 엽서에 쓰인 ‘연하샘’이라는 친근한 호칭과 일상적인 말투, 기관 동료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은 공식 문서나 전시 서류에는 남지 않는 사적 교류와 실무 현장의 유대감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 개별 해제한 편지 3점과 관련 2건 등 5건 등이 선보인다.

전시 기간에는 지역의 옛 사진을 활용한 엽서 쓰기, 음성 편지 체험, 지역 문화기관과 연계한 문화기행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관람객은 편지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미술인의 삶과 관계, 시대의 감각을 체험적으로 만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승중 학예사는 “편지가 지닌 여러 층위의 의미를 통해 관람객이 한국 미술을 보다 가까이 만나고, 편지라는 기록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도 “이번 순회전은 한 기관에 축적된 미술 아카이브를 지역의 미술사와 연결하고 그 활용 범위를 넓히는 자리”라며 “편지를 매개로 박물관과 지역 문화기관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후 전시는 11월 10일부터 12월 13일까지 부산도서관으로 이어진다.

이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K-뮤지엄 지역 순회 전시 및 투어 지원사업 '뮤지엄 이음'의 일환으로 열린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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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기 2026-09-10 11:14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 쓴 편지에서 애정이 듬뿍 느껴지네요. 싸늘한 가을날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전시회 같아요. 많은 분들이 보러 같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