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섬진강 물줄기가 가장 아름답게 흐르는 순창군 동계면 무량산 자락에 안긴 귀미마을. 고려 우왕 5년에 형성된 국내 최고의 집성촌이다. 입향조인 이씨(李氏)부인이 이 마을에 입향하여 650년의 유구한 세월이 흘렀다. 고려 우왕 4년(1355년) 집현전 대제학을 역임한 양이시(楊以時0와 그의 외아들 양수생(楊首生)으로부터 시작된다. 양수생은 1377년 직제학을 지냈으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된다. 양수생의 부인 李氏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며 1378년 유복자를 안고 개성에서 남편의 본관 남원을 향해 출발했다. 그 당시 남원의 지리산 일대는 왜구의 침탈이 극심한 때였다. 이씨부인은 난을 피해 지금의 비홍재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가 이듬해 1379년 8월 무량산 아래 귀미마을로 옮겨 650년을 남원양씨의 뿌리로 장구한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세조 13년(1467년), 하마터면 절손 될뻔한 한 성씨 가문의 맥을 잇게 된 충절의 여인 이씨부인에게 조정에서 淑人 (외명부 품계 정3품) 추서하고 烈行을 치하하는 홍판 ‘고려직제학양수생처이씨려’를 내렸다. 이 정려각은 현존하는 국내 열녀비 가운데 가장 유서 깊은 문화재로 전북특별자치도 지방문화재 제172호다. 정려비와 정려각은 지금도 수려한 정자나무와 함께 귀미 마을을 지키는 수호의 상징이다. 이씨부인은 남원을 향하면서 후손들의 영달을 바라는 간절함으로 南原楊氏 1세로부터 8세까지 가승보와 고려 과거급제 증서인 양이시와 양수생 부자의 홍패(紅牌)를 가슴에 품고 온 것이다. 현존 고려시대 홍패는 국내 6점만 전하는 귀중한 역사적 사료이다. 정부에서는 1981년 남원양씨 문중의 홍패 2점과 교지 5점을 국가보물 725호로 지정했다. 홍패는 문·무 과거급제자에게 주는 합격증서로 붉은 한지로 된 증서이다. 귀미 마을은 번성할 때는 300여 세대까지 번성하였으나 지금은 100호 정도가 조상의 터전을 지키고 있다. 한때는 초등학교가 개교하여 지역사회 교육의 터전이 마련되기도 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이 학교는 전교생이 한 성씨로 이루어져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최근에는 장수마을로 지정이 되었다. 마을 입구에 열부 淑人李氏 정려비와 정려각이 마을의 평안과 후손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南原楊氏 종택이 있고 귀문각과 우리동네작은박물관 휘양관이 지역의 역사와 사람,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국도 21호가 지나가며 마을 주위에 한국인이 가보고 싶은 관광지로 으뜸인 용궐산 하늘길과 섬진강의 대표명소인 요강바위가 있다. 은거한 학자로 추앙받던 양배(楊培)의 학덕을 기리는 龜巖亭(전북특별자치도 지방문화재 제131호)은 섬진강 물결과 수려한 산천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류의 공간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집성촌으로 안동 하회마을을 꼽는다, 하회마을은 조선시대 공조전서를 지낸 ‘류종혜’가 하회동으로 낙향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귀미마을은 고려 우왕 5년에 한 가문을 지키려는 숭고한 뜻에서 시작된 가녀린 상처투성이 여인이 구르며 넘어지고 유혈이 낭자했던 천리길이 오늘의 역사를 이루었다. 650년을 맞는 귀미마을의 이야기는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담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문화유산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우리에게 오늘을 살아가는 문화적 자산이며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이다. 집성촌은 단순한 성씨가 모여 사는 마을이 아니라 수 백년 된 문중의 역사, 입향조, 세거 과정, 종가와 고택, 제실과 정자, 고문서와 족보, 묘역과 금문석, 전통제례, 마을 풍습, 생활문화, 민속, 건축, 음식, 구전 이야기 등이 살아있는 지역문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전북의 곳곳에는 오랜 세월 한 성씨가 터를 잡고 살아온 수많은 집성촌이 있다. 마을 공동체의 생활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농촌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집성촌의 역사와 문화도 빠르게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마을 유래와 선조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며 귀중한 구전 자료와 생활 문화까지 함께 사라지고 있다. 집성촌은 시간을 이어주는 마을이다. 조상이 터를 잡고 자손들이 땀을 흘려 일군 세월이 있으며 수 백년 이어온 이야기와 기억을 이어준다. 돌담 하나, 오래된 고택 한 채, 마을 어귀 느티나무 한 그루에도 선조들의 숨결이 깃들어있다. 집성촌을 지키는 일은 사람을 기억하고, 역사를 기억하고 뿌리를 기억하는 일이다. 한 사람의 입향이 한 마을의 역사가 되고 한 마을의 역사가 한 문중의 전통이 되며 그 전통은 후손들의 미래를 열어간다. 집성촌은 세월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조상에서 후손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영원한 시간의 마을이다. 인천시는 ‘인천의 뿌리 깊은 가문’을 선정하여 가문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발굴, 보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에서 200년 이상의 대를 이어 거주했거나 본관을 두고 있는 성씨 51개 가문을 찾아. 족보와 문헌, 역사 자료 등을 확인하는 지역 정체성 보존 사업이다. 수 백년 동안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삶을 이어온 가문의 역사는 한 지역의 역사이자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이제라도 전북의 집성촌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전수조사와 기록화 사업, 전북 집성촌 문화 지도를 만들면 훗날 귀중한 지역문화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집성촌 하나를 기록하는 것은 우리 지역의 정체성과 한국 전통문화의 한 부분을 지켜내는 일이다.
/양규창(전북특별자치도문인협회 부회장, 전 혼불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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