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정평구과 비거(飛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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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조선시대 비거(飛車, 비행기구)로 하늘을 날고자 했던 김제출신 정평구의 도전과 꿈을 담은 상설공연이 관객을 만난다. ‘2026 전통예술 지역브랜드 상설공연’선정작인 ‘정평구의 하얀 비상’이 오는 4일 오후 7시 30분 김제향교 야외무대에서 개막, 다음달 31일까지 매주 금요일 진행된다. 작품은 정평구의 삶을 통해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그린다.

임진왜란 당시 두 차례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던 진주성. 조선의 실학자 신경준과 이규경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서 비차를 타고 고립된 성을 벗어나 무려 12킬로미터(30리)를 날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역사적 기록처럼 된 글에도 없고 설화에도 없는 비거 제작자로 정평구(鄭平九)가 맨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매일신보>의 기사이다.

기자 심우섭(沈友燮)이 천풍(天風)이라는 필명으로 1914년 8월 21일자 기사에 정평구와 비거(飛車) 설화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내용이다. '임진란리에 경남 진쥬셩이 함낙되얏슬 때에 그 디방에 사는 뎡평구(鄭平九)라는 이가 긔계를 만들어 공즁을 날너 셩 안으로 들어가 자긔의 친구를 구하야 늬엿다는 사젹이 력사에 분명이 잇으니, 그 긔계도 또한 지금 것과 꼭 갓흘는지는 질졍히 말할 슈 없으니 엇지 하얏던지 공즁을 날으기는 일반이라. 일로 볼진데 우리도 얼마나 됴흔 죠상을 뫼셧으며 후셰의 사람은 얼마나 계을너 자포자긔한 것을 가히 알지로다. 만일 우리가 능히 조샹의 뜻을 이어 더욱 발달하얏드면 셰샹에 비행긔 구경군은 몬져 우리 죠션으로 모혓스리로다'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진 것 가운데 하나는 김제에 널리 알려진 정평구의 설화 중에 정평구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박살낸 이야기'를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김제 사람 송기면(1882~1956) 선생의 <유재집(裕齋集)> 속에 들어 있는 '정평구전(鄭平九傳)'에 '계사년 진양 난리에 그(정평구)의 친구가 포위당하자 계략을 써서 넘어 들어가 그와 함께 탈출하였다[癸巳 晉陽之亂 其友在圍中 用計超入 與之俱出].'라는 간단한 서술을 들 수 있다.

이 두 이야기는 '임진왜란, 진주, 왜적의 저항을 맞서 이겨냄'이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 이를 바탕으로 정평구를 비거 제작자로까지 올려 세운 것이 아닌가 싶다. 정평구는 가상의 인물이다. 정평구를 언급한 사람들은 그 실존 여부에 대해서 다들 옛 기록에 있다고들 하지만 그 옛 기록을 보여 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조선사회에서 실학을 무시하고 기술과 잡학을 무시하던 풍조 때문이었을까? 혁신적인 기술인 비거 기술이 이어지지 못하고 사장되어서 아쉽다. 비거 설계도도 없기에 더욱 아쉽다. 지금 공군사관학교 박물관에는 고증에 따라 제작한 ‘비차’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2000년 KBS 역사스페셜 팀에서도 기록에 의거해 비거를 복원했고 실제 실험까지 마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비거의 존재가 왜 지속되지 않았을까? 군사력이 국력이기도 하기에 무척 아쉽다. 바람을 타고 공중을 나는 조선 비행기인 비거는 10m 높이로 날아 30리 밖으로 갔다니, 대단한 기술인데……. 이 가을에 비거를 타고 싶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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