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을 살린다는 것…다음 세대도 장사할 수 있어야

런던을 걸으며 전주를 생각하다<2회> 런던 시장의 잔혹사와 성공기에서 배우는 전주시 전통시장 지원책 획일화된 지원 대신 시장별 특성과 현실에 맞는 맞춤형 해법 필요 시설 개보수 넘어 상인 변화와 세대교체를 이끄는 공간 재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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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런던 브리지(London Bridge) 남쪽의 버러마켓(Borough Market)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인다. 채소와 치즈, 빵과 고기, 조리된 음식을 파는 가게가 철제 지붕 아래 이어진다. 오늘날 관광객이 즐겨 찾는 미식시장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버러마켓의 역사는 런던 브리지와 관계가 깊다. 중세의 런던 브리지는 템스강 남쪽과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을 잇는 중요한 통로였다. 남부 지방에서 올라온 농민과 상인들은 다리 남쪽의 서더크(Southwark) 일대에서 곡물과 가축, 식료품을 팔았다.

사람과 물건이 몰리면서 시장은 점차 도로를 차지했다. 냉장차가 없던 시대에는 살아 있는 소와 양도 오갔다. 노점과 가축, 마차가 뒤엉키면서 런던으로 들어가는 주요 통로의 혼잡도 심해졌다.

영국 의회는 1754년 도로 위 시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시장 자체를 없애는 대신 돈을 모아 새로운 부지를 마련했다. 1756년 그곳에 새로운 시장을 열었고, 그 자리가 오늘날 버러마켓으로 이어지고 있다.



## 도매시장이 살아남은 방법

19세기에 철도가 들어오면서 버러마켓은 과일과 채소를 대량으로 거래하는 도매시장으로 성장했다. 밤과 새벽에 농산물이 도착하면 소매상과 음식점 상인들이 이를 구매 해 갔다. 시장은 런던과 영국 남동부에 식료품을 공급하는 유통의 거점이었다.

그러나 대형 슈퍼마켓이 성장하면서 동네 식료품점이 줄어들었다. 이들에게 물건을 공급하던 과일과 채소 도매업도 함께 쇠퇴했다. 버러마켓은 1990년대 들어 존속 자체를 고민해야 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변화의 계기는 1998년 열린 ‘푸드 러버스 페어(Food Lovers’ Fair)’였다. 생산자와 식품업체가 참여한 행사가 인기를 얻으면서 정기적인 소매시장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버러마켓은 치즈와 빵, 식재료와 조리된 음식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미식시장으로 바뀌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시장도 장사하는 방식을 바꾼것이다.

버러마켓이 살아남은 방식을 다른 시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주민의 장보기 기능이 중요한 시장도 있고, 도매와 물류가 중심인 시장도 있다. 시장을 살린다는 것은 성공한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장에 지금 필요한 기능을 찾는 일이다.



## 스미스필드, 오래된 시장과 현대 물류의 충돌

버러마켓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스미스필드마켓(Smithfield Market)이 있다. 런던 도심의 육류 도매시장이다. 19세기에 지어진 근사한 시장건물은 영국의 등록건축물 Grade II*로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육류 도매는 19세기와 다른 건축공간을 요구한다. 냉장차량으로 육류를 들여와 일정한 온도로 보관하고, 다시 음식점과 소매점으로 배송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역공간과 냉장·저장시설, 차량 동선, 세척과 폐기물 처리를 위한 설비가 필요하다.

문제는 스미스필드가 런던 도심의 오래된 시장건물이라는 점이다. 주변 도로는 혼잡하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기존 건물 안에서 새로운 물류공간과 설비를 계속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육류 도매라는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현재의 건축물이 그 기능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스미스필드 시장을 운영하는 시티오브런던 자치정부(City of London Corporation)는 스미스필드 육류시장과 빌링스게이트 수산시장을 런던 동부 대거넘독(Dagenham Dock)에 새로 조성해 함께 옮기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건설비가 크게 오르면서 2024년 11월 이전계획을 폐기했다. 상인들은 기존 시장에서 적어도 2028년까지 영업을 이어가고, 이후 장사를 계속할 새로운 장소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받게 됐다.

스미스필드는 시장을 옮기는 일이 건물 하나를 새로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인과 물류, 저장과 배송이 함께 움직여야 시장의 기능도 이어질 수 있다. 그 모든 조건을 갖춘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버러마켓과 스미스필드는 서로 다른 선택 앞에 섰다. 버러마켓은 도매기능이 쇠퇴하자 같은 자리에서 장사하는 방식을 바꿨다. 스미스필드는 육류 도매기능을 이어가기 위해 장소를 옮기려 했다. 두 사례를 보며 시장을 판단하는 기준이 조금 선명해졌다. 그 시장이 도시에서 여전히 필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의 공간이 그 기능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 전주의 시장, 먼저 역할부터 정해야 한다

전주에도 남부시장과 중앙시장, 모래내시장 등 여러 전통시장이 있다. 같은 전통시장이라도 파는 물건과 고객, 주변 생활환경은 서로 다르다. 주민이 일상적으로 장을 보는 시장과 수산물을 다루는 시장, 음식과 관광의 비중이 큰 시장에 필요한 공간과 운영방식이 같을 수 없다.

전주시도 최근 전통시장과 상점가의 경영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매출뿐 아니라 고객 수와 종사자 규모, 업력과 결제방식, 업종 경쟁력 등을 살펴 향후 지원정책과 상권 재편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시장마다 다른 현실을 들여다본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이제 그 차이에 맞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어떤 시장에는 냉난방과 소방이 먼저 필요하고, 어떤 시장에는 냉장과 저장, 하역과 배송을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시장 현대화도 이런 차이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케이드와 주차장이 필요한 시장도 있지만 모든 시장에 같은 시설을 반복해서 설치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기능에 맞춰 필요한 공간과 시설을 정해야 한다.

건축만 바꾼다고 시장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장사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상인도 변해야 한다. 어떤 상품을 팔 것인지, 공동배송이나 온라인 판매를 어떻게 할 것인지, 빈 점포에 어떤 새로운 상인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하여 상인들의 선택과 협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다음 사람이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가게를 자녀가 이어받을 수도 있고, 시장과 아무런 인연이 없던 사람이 새로 장사를 시작할 수도 있어야 한다. 기존 상인이 계속 일할 수 있고 새로운 상인이 들어올 수 있는 시장이어야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도 시설과 경영의 현대화, 물류와 배송, 전자상거래와 청년상인 지원까지 이미 여러 수단이 마련돼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각 시장에 무엇이 필요한지 제대로 가려내는 일이다.

버러마켓은 같은 자리에서 기능을 바꿨고, 스미스필드는 기능을 이어가기 위해 장소를 바꾸려 했다. 전주의 시장도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시장은 앞으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며, 지금의 공간은 그 기능을 감당할 수 있는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은 낡은 시장의 모습도 새로 지은 건물도 아니다. 상인이 계속 일하고 새로운 사람이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시장이어야 한다.



/ 런던에서 강미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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