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농촌은 지금 지방소멸이라는 절박한 현실에 놓여 있다. 인구는 감소하고 청년들은 떠나며 빈집은 늘어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귀농·귀촌과 청년농 육성, 농촌 활성화를 위해 해마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농촌의 제도와 주민대표 구조는 시대의 변화만큼 달라졌는가.
오늘날 이장제도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조선시대부터 마을대표 역할을 하는 여러 형태가 존재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구장’ 등을 활용한 말단 행정체계가 운영되었다. 광복 이후 명칭과 법적·행정적 성격은 달라졌지만, 마을 단위 대표자를 통해 행정과 주민을 연결하는 구조는 오늘날 이장제도로 이어져 왔다.
따라서 현재의 이장제도를 단순히 ‘일제가 만든 제도’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형성·운영된 마을 단위 행정체계의 영향을 포함해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주민대표 구조를 이제 시대에 맞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농촌은 이미 완전히 변했다.
과거 수십 가구, 수백 명이 살던 마을에 이제 몇 가구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반면 생활권은 자동차와 교통의 발달로 훨씬 넓어졌다. 그런데 몇 가구가 사는 마을에도 이장이 있고 수십 가구가 사는 마을에도 이장이 존재하는 기존 구조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검토해야 한다.
특히 ‘오래 살았다’는 이유가 기득권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마을에서 오래 살아온 경험과 경륜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 들어온 주민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갖거나 마을의 의사결정을 독점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귀농·귀촌인이나 청년에게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마을에서 배제하거나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해 결국 농촌을 떠나게 만든다면, 국가가 아무리 많은 귀농·귀촌 예산을 투입해도 농촌은 살아날 수 없다.
사람을 데려오는 데 세금을 쓰고, 정작 마을의 폐쇄적인 문화 때문에 그 사람이 다시 떠난다면 결국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는 셈이다.
이제 이장제도를 조금 고치는 수준을 넘어 농촌 주민대표 체계 자체를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나는 기존의 마을별 이장제도를 장기적으로 ‘권역별 지역의원제도’ 하나로 통합·개편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인구와 생활권을 기준으로 여러 마을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고 주민이 직접 지역의원을 선출하는 것이다. 지역의원은 행정사항을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주민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수렴해 지방행정에 전달하고 지역사업과 예산을 살피는 주민대표가 되어야 한다.
임기도 예를 들어 4년으로 명확히 정할 수 있다.
잘하면 주민에게 다시 평가받아 선택받고, 주민의 신뢰를 잃으면 다른 사람이 선택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주민자치이고 풀뿌리 민주주의다.
여기에 지방의회의 역할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역구 의원은 자신의 권역 주민을 직접 대표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비례대표 의원은 단체장과 지방행정을 전문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특정 지역이나 단체에 특혜가 집중되고 있지는 않은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사업이 주민 전체를 위해 공정하게 추진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것이다.
비례대표 역시 단순히 정당의 자리를 배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행정·예산·복지·농업·청년정책 등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 지방행정을 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청년들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
마을의 작은 주민대표에서부터 청년들이 지역행정과 정치에 참여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귀농·귀촌인과 여성, 다양한 직업과 경험을 가진 주민들도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농촌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이 경륜은 될 수 있어도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꾸려는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구조와 그 구조에서 만들어지는 기득권을 바꾸자는 것이다.
정치권도 표를 의식해 농촌의 오래된 제도개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면서 과거의 주민대표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농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직책이 아니라 제대로 된 주민대표다.
마을마다 이장을 두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권을 중심으로 권역을 구성하고 주민이 직접 지역의원을 선택하자. 지역의원은 주민을 대표하고, 비례대표 의원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단체장과 행정을 견제·감시하도록 역할을 명확하게 나누자.
일제강점기를 거쳐 이어져 온 낡은 행정의 흔적은 과감히 재검토하고, 그 자리에 21세기에 맞는 주민자치제도를 세워야 한다.
이것은 이장이라는 명칭 하나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농촌의 기득권 구조를 걷어내고 청년과 새로운 주민에게 참여의 문을 열며, 주민이 직접 선택하고 주민에게 책임지는 새로운 지방자치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농촌의 변화는 가장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장에서 권역별 지역의원으로, 관행에서 주민의 선택으로, 기득권에서 책임과 견제로.
그 변화가 시작될 때 농촌은 비로소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논의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농촌지역 몇 곳을 선정해 ‘권역별 지역의원제’와 새로운 주민대표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그 성과와 문제점을 주민에게 직접 평가받아 보자. 성공한다면 전국 농촌지역으로 확대하면 된다.
제도는 시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농촌이 먼저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주민자치의 길을 연다면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변화도 가장 작은 마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송완복(자연치유생리전문가 농업법인 자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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