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배롱나무가 붉게 물들던 날

이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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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여름의 한복판, 폭염과 장대비 속에서도 홀로 의연하게 분홍빛 꽃 타래를 피워 올리던 마당 끝의 배롱나무를 기억한다. 백 일 동안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지우기를 반복 한다고 해서 ‘목백일홍’이라 불리던 그 나무.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세상의 모든 초록이 지쳐 갈 때 배롱나무는 마치 제 가슴속 뜨거운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소녀처럼 곱고 짙은 분홍빛 그늘을 마당 가득 드리우곤 했다.

그러나 구월의 서늘한 바람이 담장을 넘어오기 시작할 무렵이면 배롱나무는 문학적인 변신을 준비한다. 화려했던 분홍 꽃잎들을 미련 없이 흙으로 돌려보낸 뒤, 매끄럽고 하얀 줄기 끝에 붙은 잎사귀마다 은밀하게 물을 들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가을 단풍이라 하면 단풍나무의 뾰족한 잎이나 은행나무의 노란 깃발을 떠올리지만, 진정한 서정의 깊이를 아는 이에게 가을의 시작은 단연 배롱나무가 제 몸을 붉게 물들이는 그 고결한 순간이다. 백일홍은 예로부터 선비의 절개를 상징한다고 해서 배롱나무로 불리게 됐는데. 서원이나 고택의 마당에 유독 많이 심어있다.

배롱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껍질이 없다. 미끄러울 정도로 매끄럽고 흰 살결을 그대로 드러낸 채 세상의 풍상을 견뎌내는 나무다. 그렇기에 그 매끄러운 줄기 끝에서 피어나는 가을의 붉은빛은 마치 피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한순간에 아리게 만든다. 어느 가을날 해가 질 무렵, 나는 오래된 툇마루에 앉아 배롱나무를 가만히 건너다보았다. 노을빛과 배롱나무 잎의 붉음이 묘하게 겹쳐지던 그 시각, 바람이 불 때마다 붉은 잎사귀들은 마치 아날로그 라디오의 미세한 주파수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보고 있노라면 잊고 지냈던 아득한 시절의 한 장면이 우체부의 오래된 가방 속 편지처럼 살포시 찾아온다.

그것은 까마득한 유년의 가을, 툇마루에 앉아 밤을 까주시던 어머니의 붉게 물든 손끝이기도 했고, 가슴속에만 묻어두고 차마 꺼내지 못했던 청춘의 수줍은 첫사랑의 얼굴이기도 했다. 매끄러운 나무줄기 위에 붉게 물든 잎들은, 마치 세상의 수많은 시련을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건넬 수 있는 다정한 안부편지 같았다.

“너도 그동안 참 많이 애썼구나. 너의 푸르던 날들도 이처럼 아름다운 붉은 빛을 품기 위한 과정이었단다.” 배롱나무는 말없이 붉은 잎을 흔들며 내게 그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비워내지 않고서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없음을, 제 몸의 수분을 거두어들이고 가장 깊은 곳의 빛깔을 끌어 올려 세상에 보여주는 저 나무처럼, 인생살이 역시 세월의 서리를 맞으며 비로소 자신만의 고유하고 숭고한 색깔을 완성해 가는 것이리라.

지친 창가에 붉은 온기를 놓아두며, 배롱나무가 붉게 물들던 날, 나는 마당에 떨어진 잔잔한 붉은 잎 하나를 가만히 집어 들었다. 책장의 가장 깊은 페이지, 아름다운 시집의 문장 사이에 그 잎을 살포시 넣어두며 생각한다. 화려했던 여름의 꽃은 갔지만, 그 꽃을 지탱해준 세월의 노고가 이토록 투명하고 맑은 붉은 빛으로 남았듯이, 우리의 지나온 시간 역시 결코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오늘밤, 세상의 거친 소음과 일상의 고단함에 지친 당신의 창가에도 배롱나무의 붉은 온기가 살포시 내려앉기를 바란다. 쥐고 있던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그릇을 차분히 비워낼 때, 비로소 세상의 가장 고운 빛깔이 우리 내면에 담기기 시작한다.

배롱나무가 제 몸으로써 내려간 붉은 서정시처럼, 깊어 가는 가을에 당신과 나의 삶 역시 더욱 깊고 다정하게, 노을보다 아름답게 물들어가기를 나지막이 소망해 본다.



이종순 수필가는



'문예사조'로 수필 등단, '시조문학'으로 시조시인 등단

문학박사. 우석대학교 대학원 외래교수

한국국보문학 시조부문 대상 수상

교육부 유보통합 연구진 교육부장관상 수상

'창의 숲 연구소'와 '아이가 크는 숲'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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