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황방산 아래에서 농업의 미래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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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2014년,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농촌진흥청이 전주·완주 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전국 열 곳의 혁신도시 가운데 왜 농촌진흥청은 전주로 왔을까. 문득 품었던 이 질문의 답을 나는 가까이에 있는 황방산에서 찾았다.



황방산은 전주의 북서쪽에 자리한 야트막한 산이다. 누를 황(黃) 자와 삽살개 방(尨) 자를 쓴다. 전주의 북서쪽으로 빠져나가는 기운을 막고 액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누런 삽살개가 밤새 지키는 형상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후백제 견훤이 전주에 도읍을 정한 뒤 외침을 막기 위해 산성을 쌓고 군사를 주둔시켰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황방산에서 농촌진흥청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되바위고개’가 있다. 그곳의 큰 바위 한가운데에는 곡식의 양을 재던 됫박 모양의 홈이 파여 있다. 안내문에는 해마다 되의 크기가 달라 어려움을 겪던 백성들이 분쟁을 막기 위해 바위에 표준 크기의 되를 새겼다고 적혀 있다.



농업 연구도 측정에서 출발한다. 길이와 무게, 온도와 습도, 작물의 생육 상태를 정확히 재야 문제의 원인을 찾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 수 있다. 오늘날에는 국제적으로 통일된 단위를 사용하지만, 오래전 이곳의 사람들도 정확한 기준이 백성의 삶을 지키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되바위가 있는 황방산 아래에 과학을 바탕으로 농업 문제를 해결하는 농촌진흥청이 자리한 것은 각별한 인연처럼 느껴진다.



황방산에서 혁신도시를 내려다보면 기지제라는 저수지가 보인다. 기지제는 한자로 기계 기(機), 못 지(池), 둑 제(堤)를 쓴다. 본래 우리말 이름은 ‘틀못’ 또는 ‘틀방죽’이었다. 황방산에서 내려다본 저수지의 모양이 베를 짜는 베틀과 닮아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틀’을 기계 기(機) 자로, ‘못’을 못 지(池) 자로 옮기고, 저수지의 둑을 뜻하는 제(堤) 자를 붙여 기지제가 된 것이다.



이름의 유래를 알고 나면 기지제 옆에 농촌진흥청이 자리한 것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과거의 베틀이 사람의 손과 발을 대신해 옷감을 짰다면, 오늘날의 농업기계와 로봇은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덜고 힘든 작업을 대신한다. 인공지능을 갖춘 농업로봇은 작물의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작업을 스스로 판단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기계’를 품은 기지제 곁에서 농촌진흥청이 농업기계화와 지능형 농업의 미래를 연구하는 것은 우연을 넘어 특별한 인연처럼 느껴진다.



농업은 기후위기와 고령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산업이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로봇, 생명공학과 위성기술을 가장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미래 산업이기도 하다. 전북은 넓은 들녘과 풍부한 농생명 자원,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연구기관과 대학을 갖춘 대한민국 농생명산업의 중심지다. 이제 전북에서 개발한 기술이 우리 농업을 바꾸고 세계의 농업 문제를 해결할 차례다.



농촌진흥청의 전북 이전은 단순히 청사와 직원이 자리를 옮긴 일이 아니다. 국가의 농업 연구기관이 지역의 대학, 기업, 농업인과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지역 안에서 이어지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전북의 들녘과 농가에서 먼저 실증되고,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는 다시 새로운 연구과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이 쌓이면 전북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지역을 넘어 미래 농업기술을 만들고 세계로 확산하는 중심지로 성장할 것이다.



농촌진흥청과 전북특별자치도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행정의 힘과 연구기관의 전문성, 대학의 인재, 기업의 창의성, 농업인의 경험이 하나로 모이면 전북만의 농생명 혁신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농업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좋은 일자리를 발견하고, 지역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꿈을 펼칠 기회도 더욱 넓어질 것이다. 농업의 발전이 지역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지역의 성장이 다시 대한민국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지방시대의 모습이다.



조선시대 지관의 예언대로 황방산은 이제 전주의 변방이 아니라 전북특별자치도청이 있는 신시가지와 혁신도시를 잇는 중심이 되었다. 황방산 아래에 터를 잡은 농촌진흥청도 전북과 함께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가고 있다. 되바위가 공정한 기준으로 백성의 어려움을 덜어주었듯이, 기지제의 베틀이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었듯이, 농촌진흥청의 과학기술도 농업인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국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 쓰여야 한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성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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