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충경사와 충경로와 이정란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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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유월 중순 남고산성을 둘러보고 억경대에서 전주를 관망하기 위해 세 남자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충경사였다. 도로명으로는 남고산성 1길 이지만, 일반적으로 남고사 입구 혹은 남고산성 입구라고 불리는 곳에 충경사가 자리하고 있다. 전주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장소라고 생각했었는데, 전주에서 십수 년을 살았어도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충경사는 이정란 장군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이고 충경로는 이정란 장군이 이룬 공적과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지정한 도로명이다. 충경로는 다가교사거리에서 병무청오거리까지를 잇는 전주 원도심을 동서로 관통하는 핵심 도로이며 객사, 풍년제과, 동부시장이 있으며 풍남문과 한옥마을로 연결되어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흔히 '관통로'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충경로는 1980년 제61회 전국체육대회 개최에 맞춰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간선도로로 개설되었다. 도로 명칭은 임진왜란 당시 전주부성을 지켜낸 충경공 이정란 장군의 시호에서 유래하였다. 기존의 팔달로와 함께 '십자(十)형' 도로망을 완성하며 전주 구도심 성장을 이끌었으며 전주천 서부 지역(중화산동, 효자동 등)이 시가지로 확장되는 교두보가 되었다. 이 도로는 과거 1980~90년대에는 전주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활기가 넘쳤던 곳이다.

충경공 이정란(李廷鸞, 1529~1600) 장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 전주부성을 지켜내며 곡창지역인 전라도를 수호한 주역이다. 전주에 세거한 전의 이씨로, 1568년(선조 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성균관전적, 해미현감, 양재찰방, 개성부도사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특히 이정란은 정여립보다 17년이나 앞선 사람으로 전주 인근에서 정여립의 성장에 대해서 직간접으로 듣고 알았던 까닭으로 정여립에 대해 “성품이 흉패함을 미리 알아보고 그를 왕망이나 조조에 비유하며 비판했다”고 한다. 이정란은 공개적으로 정여립을 비판하며 대립했던 관계로 정여립이 요직에 있을 때, 이정란은 인사 과정에서 정치적 압박과 방해를 받았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전하고 있다. 그런데 서인의 공격은 무자비하여 기축옥사가 발생하자 정여립과 대척했던 이정란에게도 같은 고향(전주)사람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모함을 하여 벼슬을 내려놓고 전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키고 전주성에 들어가 수성장(守城將)이 되어, 관원들과 도망치려던 자들을 단속하고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끝까지 성을 사수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이 전주성을 포위하자 성안의 명나라 장수마저 성을 버리고 도망치려는 등 큰 혼란이 일어났다. 이에 전주성 수성부장이 되어 성을 지켜내며 혼란을 수습했다. 이후 전주부윤 겸 삼도소모사(三道召募使)에 임명되어 전란 수습과 군사 모집에 힘썼다.

사후에 나라를 구한 공로로 '충경(忠景)'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그의 위패를 모신 충경사가 건립되었고 앞서 언급한 충경로는 충절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도로명에 그의 시호를 붙인 것이다.

충장로는 광주를 상징하는 도로명이다. 충장로는 조선시대 광주읍성에서 남북을 잇는 핵심도로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본정(本町, 혼마치)라 불리웠고 도청과 경찰서 등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 전남 지역 통치기구가 늘어서 있었으며 조선인 수탈과 관리 거점이었다. 광복을 맞이하여 일제 잔재 청산으로 본정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지우고 역사와 지역 정체성을 담아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1947.8.15.)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육지 이순신으로 일컬어지며 무훈을 세웠으나 배신과 모함으로 참수당한 광주 출신의 김덕령 장군 시호인 충장(忠壯)을 도로명으로 개정하였다. 충장로는 금남로와 더불어 광주를 대표하는 유명한 도로가 되었다.

충경로와 충장로는 임진왜란 당시에 활약했던 두 분의 시호를 따서 도로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도시가 품고 간직한 인물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인물도 평범하지 않다. 인물을 통해 도로명을 짓든 도로를 통해 인물을 기억하든 중요한 것은 역사 인물을 기억하는 일이다. 특히나 지역에서는 생각할수록 고마운 사람 아닌가?/김현조(국제펜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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