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요즘 나는 결핍이라는 단어 앞에 자주 멈춰 선다. 채우지 못한 것이 인지 능력을 좁히고, 원할수록 오히려 멀어진다는 결핍의 메커니즘. 최근 읽는 책 한 권이 나를 이 질문 앞에 세웠다.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아직 완독하지 못했지만, 한 줄씩 밑줄을 그어갈 때마다 그것은 책 속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다.
어릴 적 나는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한 아이였다. 실력이 없었으니까. 몸이 약해 늘 보호받는 자리에 있었고, 무언가를 시작해도 하다 말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자격증에 도전했다. 겉으로는 열심히 했다 여겼지만 내실은 다져지지 않았고, 그래서 번번이 떨어졌다. 그 부족함은 지나간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과거가 요즘 딸에게로 옮겨간다. 딸은 딸인데, 나는 딸의 모습에 나를 대입한다. 딸이 자격증을 준비하는 한 주간, 나는 딸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내 불안을 얹었다. 채우지 못한 내 것이 딸에게도 계속 적용되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못하고 내 감정대로 딸을 흔들려 했던 순간들. 돌아서면 알았다. 아, 내가 또 그랬구나.
결핍은 인정받지 못한 과거가 수치심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상대는 아무 감정 없이 자기 길을 가는데, 나 혼자 그 앞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바늘을 세운다. 고슴도치처럼. 그 바늘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멘토는 말씀하셨다. 그 패턴에 흔들리는 나를 빨리 인정하라고. 아, 그게 나구나. 부족한 사람이니 계속 배워야 한다는 것. 불평 대신 보듬으며 하나씩 채워가자는 여유를 가지라고.
운전도 마찬가지다. 도로가 불편해 피하기만 하면 영영 친해질 수 없다. 누군가 대신해주기를, 보호 아래 있기를 바랐던 패턴을 이제 멈추려 한다. 지금의 어른인 내가, 자라지 못한 내 안의 아이를 돌볼 차례다.
상처 주고 상처받은 것이 반복되어온 현실을 먼저 인정하고, 그다음 그 아이를 돌볼 보호자로 나를 키워가는 걸음을 걷는다. 업무에서 끝까지 해내지 못한 몫이 있었다. 그 책임을 다른 자리에서라도 지고 싶었다. 그래서 구월 첫날부터 아침 여섯 시, 보이는 라디오 〈정미의 다음 단계〉를 시작했다. 니체의 우버멘쉬 시로 하루를 열고, 제품을 짧게 소개하고, 책을 소리 내어 읽는다. 자라지 못한 누군가에게 문장 한 줄이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작심삼일일 수도, 한 달만일 수도, 하다 말다일 수도 있다. 그래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시작한다. 결핍은 결국 나를, 배움 속 부딪힘을 통해 다시 채워야 할 존재로 인정하는 자리로 데려왔다.
/해맑음농업회사법인 이사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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