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소재가 불분명했던 ‘현감 최공 경회 선정불망비’가 장수군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26일 해주최씨 종중 회장단이 장수군청을 방문, 의암공원 장수현감 선정비석군에 세워져 있던 비석 가운데 그동안 ‘현감 아무개의 비석임’으로 잘못 알려져 있던 비석이, 관련 자료와 확인 과정을 거쳐 ‘충의공 최경회 선생의 ‘현감 최공 경회 선정불망비’임이 최종 확인됐다.
이에 장수군청에서는 우선 현장 안내판의 명칭을 기존 표기에서 ‘현감 최공 경회 선정불망비’로 바로잡기로 했다고 한다.
의암공원(의암루 뒤편) 비석군에 실제로 남아 있는 이 비석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 전면의 글씨가 거의 마모되어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
장수문화원이 1999년 11월 30일 발행한 ‘장수지방 금석문화’에 ‘현감최공경회선정불망비(縣監崔公慶會善政不忘碑)’가 나온다.
‘장수지방 금석문화(長水地方 金石文化)’는 장수 지역에 분포한 비석, 벽화, 바위 글씨 등의 금석문 유산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정리하여 발간한 학술 조사 보고서이다.
이 책을 보면, 조선시대 장수현감을 지낸 '최경회'가 백성을 가엾게 여겨 선정을 베푼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백성들이 세운 공덕비(선정비)이다. 주소는 장수읍 중동으로 나오며, 크기는 가로 46cm × 세로 96cm × 두께 21cm로 돼 있다.
학술 조사 보고서 ‘장수지방 금석문화’엔 탁본 조사를 통해 이 비석이 "현감 최공경회 선정불망비(縣監崔公慶會 善政不忘碑)"라는 명확한 사실이 이미 밝혀져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의암공원 비석군 현장에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이를 반영하지 않고 단지 이름을 알 수 없다는 뜻의 "현감 아무개의 비석임"으로 방치했다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학술적으로 최경회 현감의 공덕비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 현장 안내판엔 '현감 아무개'로 무성의하게 방치되어 있어 하루 빨리 시정이 필요해보인다.
육안으로 보아도 ‘현감’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단 한 번의 탁본을 거쳤더라도 쉽게 비석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을 터이다.
아마도 중동에서 의암공원으로 이동하면서 비석의 글귀를 못 알아본 채 옮겨놓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공산이 커보인다,
비석의 실제 주인공인 임진왜란의 의병장 최경회(崔慶會) 장군이 1577년부터 1578년까지 장수현감으로 재임했던 구체적인 시기를 고증해 주는 기록이다.
겨레의 여인 주논개(朱論介, 1574-1593)는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태어났다. 1593년 6월 남편 최경회(崔慶會, 1532~1593) 현감을 따라 2차 진주성 싸움에 참전했다가 중과부적으로 성이 무너지고 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버린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생으로 가장하여 왜군 승전연에 참석, 왜장 모곡촌육조(毛谷村六助: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진주 남강변 현재 의암이라 불리는 바위로 유인, 함께 투신 순국했다. 최경회 장군은 화순 출신이다.
한편 ‘장수지방 금석문화’는 동신대학교와 원광대학교 박물관이 협력하여 조사했음을 알 수 있다.
책임연구원은 오종근(동신대 교수, 문화학박사), 연구원은 정태덕 (동신대 강사), 연구보조원은 김의영, 김일동, 김향미, 김경모, 탁본은 이종철(원광대 박물관)로 돼 있다.
문중측은 현재의 비석은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인 만큼, 비석을 새로 제작하는 문제는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 향후 조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선정비석군의 배치와 관련해서도 최경회 현감 선정불망비를 가장 우측으로 옮겨 달라는 요청을 전달했다.
류정훈 화순향교 청년유도회장은 “오랫동안 잘못 알려져 있던 비석이 다시 본래의 주인을 찾고, 그 이름과 역사적 의미를 바로 세우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생각한다”면서 “무엇보다 이 소중한 사실을 처음 알려주신 최산두 해설사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이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장수군청을 직접 찾아가 사실을 확인하고, 최경회 선생의 역사적 흔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애써주신 해주최씨 종중 회장단과 선생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면서 ‘작은 비석 하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지만, 그 안에는 선조의 이름과 역사, 그리고 후손들의 책임이 담겨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장수에 남아 있는 최경회 선생의 역사적 흔적들이 하나하나 제 이름을 되찾고, 올바르게 보존·정비되기를 기대한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의 손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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