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런던의 오래된 발전소들이 문화예술의 명소로 거듭났듯,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전주 팔복예술공장은 이제 지역의 문화예술을 밝히는 활기찬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런던을 걸으며 전주를 생각하다
오래된 도시의 경쟁력은 낡은 것을 없애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시간을 품은 건물과 거리,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삶과 기억을 오늘의 필요에 맞게 이어갈 때 그것은 도시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된다.
런던은 오래된 건축물을 잘 보존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존에만 머물지 않는다. 발전소를 미술관과 상업시설로 바꾸고, 시장의 기능은 더 나은 시설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기존 시장건물에는 새로운 쓰임을 모색한다.
그 과정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건축물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것만으로 도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그 변화가 사람들의 삶과 도시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지가 중요하다.
이 기획은 런던을 모범답안으로 소개하는 답사기가 아니다. 오래된 도시 런던이 변화를 선택해 온 과정에서 얻은 성과와 한계를 통해 전주가 앞으로 어떤 도시를 만들어가야 할지 묻는다.
<1회> 멈춘 발전소, 되살아난 도시…런던의 재사용 실험
템스강 남쪽에 거대한 벽돌 건물이 서 있다. 한때 런던에 전기를 공급했던 뱅크사이드 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다. 발전소는 1981년 가동을 멈췄다. 하지만 건물의 생명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2000년 테이트모던(Tate Modern)이라는 현대미술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미술관 전환 설계는 스위스 건축가 헤르초크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맡았다. 이들은 발전소의 벽돌 외벽과 굴뚝, 거대한 내부 공간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살렸다. 발전기가 놓였던 터빈홀은 전시장이자 통로가 되었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머무는 실내 광장 역할까지 한다.
터빈홀에서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유모차를 끌고 들어온 부모가 있었고, 아이들은 넓은 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뛰어다녔다. 미술관이라고 해서 모두가 작품 앞에 서서 조용히 관람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걷고, 누군가는 쉬고, 아이들은 그 거대한 공간을 자연스럽게 자기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공간을 특별한 부담 없이 일상의 일부처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건축은 설명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먼저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발전소 내부를 잘게 나누지 않고 남긴 선택은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었다. 일반적인 미술관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대형 작품과 설치미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발전소 시절의 거대한 규모와 구조가 새로운 문화공간에서는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됐다.
## 발전소와 보행축이 함께 도시를 바꾸다
테이트모던이 문을 연 것과 거의 같은 시기인 2000년 6월, 밀레니엄 브리지가 개통됐다. 템스강 북쪽의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과 남쪽의 테이트모던이 보행로로 직접 연결됐다.
미술관 하나만 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강을 건너는 새로운 길이 놓이면서 템스강 양쪽의 관계도 달라졌다. 사람들은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다리를 건너 테이트모던으로 향하고, 다시 강변을 따라 걷는다. 이 보행축 속에서 테이트모던은 하나의 목적지이면서 동시에 도시를 통과하는 길의 일부가 됐다.
건물 안에서 작품을 보는 사람과 강변을 걷는 사람, 다리를 건너는 시민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겹친다. 오래된 건축물의 재사용이 도시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건물 안의 용도만 바꾸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변의 길과 광장, 대중교통과 보행체계가 함께 연결되어야 한다.
## 배터시는 같은 발전소지만 다른 길을 택했다
뱅크사이드 발전소가 테이트모던이라는 공공적 성격의 미술관으로 바뀌었다면, 배터시 발전소(Battersea Power Station)는 대규모 민간개발을 통해 상업·업무·주거 기능이 결합된 복합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배터시 발전소는 1933년 전력 생산을 시작했다. 전성기에는 런던 전력의 약 5분의 1을 생산하며 국회의사당과 버킹엄궁전에도 전기를 공급했다. 1980년에는 영국의 등록문화유산 Grade II로 지정됐고, 1983년 가동을 완전히 멈춘 뒤에는 오랫동안 새로운 쓰임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됐다. 이후 건축적·역사적 가치가 다시 평가되면서 2007년 ‘특별히 중요한 건축물’에 해당하는 Grade II*(Grade Two Star)로 등급이 상향됐다.
전환점은 대규모 민간개발이었다. 발전소와 주변 부지를 주거와 업무시설, 상점과 식당, 공공공간이 어우러진 지역으로 바꾸는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됐다. 굴뚝과 벽돌 외벽, 터빈홀의 일부 구조와 장식은 남겼고, 발전소 내부에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이곳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때 발전소였던 공간을 오늘의 시민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현대의 발전시설은 대부분 일반인이 가까이에서 접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발전소 특유의 거대한 규모와 높은 내부 공간, 특수한 구조와 재료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과거 산업시설이 박제된 유물로 남은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일상 속으로 다시 들어온 것이다.
발전소처럼 철저히 기능을 위해 지어진 건물도 제대로 지어 놓으면 본래의 기능이 사라진 뒤에도 긴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우리도 건물을 지을 때 당장의 쓰임과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이 지나 다른 쓰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처음부터 허투루 짓지 말아야 한다.
두 곳은 발전소였다는 과거의 용도는 같은데, 다시 사용되는 방식은 달랐다. 테이트모던은 미술관이 되었고, 배터시는 상업·업무·주거가 결합된 복합공간이 되었다. 이처럼 도시재생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으며, 지역의 역사와 환경, 사회·경제적 조건에 맞는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두 발전소를 걷고 나니 자연스럽게 전주의 오래된 산업시설들이 떠올랐다.
## 팔복예술공장 다음은 어디인가
전주에도 팔복예술공장이라는 의미 있는 도시재생 사례가 있다.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공장의 구조와 공간을 재활용하여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꿨다. 공장의 시간을 모두 지우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전주의 산업화 과정과 팔복동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시간을 읽을 수 있다.
이제 문제는 그다음이다. 전주에는 여전히 철거와 재사용의 갈림길에 놓인 오래된 건축물과 산업시설이 많다. 팔복동 휴비스 부지도 그중 하나다.
공공이 이런 대규모 부지를 매입할 때는 철거부터 결정할 것이 아니라 먼저 무엇을 다시 쓸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건물의 구조는 안전하게 재사용할 수 있는지, 산업사적으로 남길 가치가 있는 시설은 무엇인지,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보여주는 공간은 어디인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주변의 도로와 보행체계, 앞으로 필요한 도시 기능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모든 낡은 건물을 남길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철거해서도 안 된다. 전주가 오래된 도시의 경쟁력을 가지려면 철거와 신축보다 먼저 재사용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원칙부터 세워야 한다. 무엇을 없앨 것인가보다 무엇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먼저 묻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오래된 건물을 남기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이미 사용한 자원을 다시 쓰고, 그곳에 쌓인 사람들의 시간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일이다.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것만큼, 이미 가진 도시를 잘 이어가는 것도 도시정책의 중요한 선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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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미현은
전주에서 건축사사무소 예감을 운영하는 건축사이자 건축공학박사다. 30년 가까이 건축설계 현장에서 일하며, 지역의 건축과 도시의 기억, 지속 가능한 건축,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주거공간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전북건축문화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2024년 전주시 예술상 건축부문을 수상했다. 저서로 『집을 짓고 건축가를 만나라』와 『존엄하고 초라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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