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좋은 일이 생길까' 전주 한옥마을 400여 년 된 회화나무에 꽃이 피다

청백리 이상진이 심은 구 교동사무소 앞 회화나무 무더위 몰아낸 채 꽃 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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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전주 한옥마을에 생기가 넘쳐난다. 400여년 된 회화나무에 꽃이 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처럼 전주에 좋은 일이 생길까.

선산지킴이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는 회화나무가 왕성한 수세와 탐스런 꽃이 만개했다.

회화나무 꽃은 여름에 피어나며, 좋은 의미와 길조로 여겨진다. 35여 도의 염천의 무더위를 잘 이겨낸 채 노란빛을 띠는 흰색 꽃을 피우고 있다.

전주출신으로 조선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만암(晩庵) 이상진(李尙眞, 1614~1690) 선생의 생가터는 한옥마을 내 고하문예관 바로 앞, 완산구 교동 244-1(향교길 25)에 자리하고 있다.

정승목인 이 회화나무 한 그루는 4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청렴과 선비정신을 상징, 그가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 나무는 도로포장이 된 위로 자동차가 다니거나 인도의 보도블럭이 나무의 뿌리를 누르고 있어도 콩과식물이라는 특성으로 오랜 기간 잘 커오고 있다.

한국전쟁 등 나라에 큰 일이 생기면 밤새 울음소리나 괴괴한 소리를 내어 불길한 징조를 알렸다고 전한다.

올해는 그 어느때보다 왕성한 수세로 탐스런 꽃이 온 나무를 덮어 멀리서 보면 마치 작은 동산에 흰 눈이 쌓인 듯 해 지나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무 밑에 자칫 차를 세웠다가는 떨어지는 꽃으로 인해 낭패를 당하기도 할 뿐 아니라 밤이 되면 가로등 불빛을 타고 낙하하는 광경이 마치 한겨울 밤의 싸락눈이 내리는 분위기를 연출하자 더위를 피해 회화나무 밑에 모인 인근 주민들은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광경에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회화나무는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 고결한 선비의 집이나 서원, 절간, 대궐 같은 곳에만 심을 수 있었다. 이 나무는 가지 뻗는 모양이 멋대로 자라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고 해 일명 학자수라고도 불리며 옛날 양반이 이사를 갈 때는 반드시 쉬나무와 회화나무 종자는 챙겨서 쉬나무는 종자를 따서 등잔불을 밝히는 기름을 짜고 회화나무는 고고한 학자임을 사방에 알리기 위해 심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상진은 현종12년(1671.1.20) 제148대 수원부사로 부임한다. 하지만 신준 등의 중임으로 139번째 인물이다. 수원부사 부임 때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잇달았다.그는 녹봉으로 기민(饑民)을 정성껏 구제했다. 그의 선정에 백성들이 1705년 세운 송덕비가 지금도 수원박물관에 있다. 그의 청백리 선발은 1695년으로 실록에 전한다.

그는 빙벽처럼 절조가 굳다. 일은 엄격하며 시비는 도끼로 자르듯 소신이 뚜렷했다. 평생 한 번도 소신을 굽혀 남에게 동조한 적 없던 터. 남 눈치 보는 따리꾼을 비루하게 여겼다.

불의엔 왕께도 굽히지 않아 1652년 상소에서 "<중략> 전하의 천품은 순수하나 영예가 너무 드러나고, 학문은 고명하나 덕을 견지함이 넓지 못합니다. 신하를 접할 때 화평이 부족하고, 어명은 온당치 못한 것이 있습니다. <중략>"고 했다.

그는 네 명의 왕을 섬기며 오로지 임금과 나라만 걱정했다.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도 내직이나 외직에 있거나 한결같이 다르지 않았다. 특히, 그의 대쪽 절개는 남들은 엄두를 못내는 왕에게 치중했다.

1654년 상소엔 "<중략> 전하께서 이미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기 싫어하여 신하들이 말을 서로 경계합니다. 이제는 사슴과 말이 형체가 바뀌어도 바른말을 하는 신하가 없을 것입니다"고 했다.

1654년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정5품)으로 있을 때에는 당시의 시사(時事)를 여러 차례 직언해 왕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1689년 왕비의 폐위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 "이에 관한 소를 올리는 자는 대역죄로 다스리겠다"는 지엄한 왕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忠憤)을 억제할 길이 없어 폐위의 부당함을 간하다가 숙종(肅宗)의 진노를 샀다.

이에 종성, 북청, 철원 등지로 귀양갔다가 소결(疏決,죄인을 너그럽게 처결함)로 용서되어 옛집에서 우거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신분이 귀해진 뒤에도 끼니가 자주 떨어졌다. 죽을 때까지 한 채의 집조차 없었단다. 옷이나 이불은 단지 몸만 가리고자 했다고 전한다. 부서진 창문과 너덜너덜해진 깔개를 남들은 견디지 못했으나 그는 편안하게 여겼다.

현재 이 회화나무를 지키는 '하늘 물고기 아트' 예술 공간이 운영되고 있어,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예술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최영숙 시인. 화가는 종종 회화나무에 막걸리와 물을 희식시켜 주면서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집안에 큰 학자를 배출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공을 쌓을 인물이 태어난다고 믿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여름에 가득 피었다가 한꺼번에 지는 노란 꽃의 회화나무를 보고 '과거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하며 시기를 가늠했다"고 했다.

이어 "나무를 문 앞에 두면 잡귀의 접근을 막아 집안이 대대로 평안하다고 믿었다"면서 "회화나무의 꽃이 만개하면 풍년,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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