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일주명창> ‘갈등(葛藤)과 '모죽(毛竹)의 정치학(政治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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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한국 정치권은 여전히 미증유의 얽힘 속에 갇혀 있다.

국회의사당 정문앞에 피어있는 배롱나무(백일홍)의 향기가 무색할 정도로 아수라장이다.

100일 동안 꽃이 있어 백일홍으로 불리는 배롱나무의 꽃말은 '헤어진 벗에게 보내는 마음' '행복'이다.

묘한 여운을 남긴다.

여야가 충돌하는 국회 상임위장은 매일같이 날 선 고성과 삿대질로 얼룩지고 있다.

국민의 눈에 비친 정치판은 소모적인 대립과 정체(停滯) 그 자체다.

무엇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되는 일 없이 답답한 대치 국면만 지속되다 보니, 민생을 염원하는 대중의 마음속에는 깊은 회의와 피로감이 깃든다.

​하지만 정치의 정체기와 상호 대립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상의 소음에서 생태적 통찰로 옮겨보면 어떨까.

대나무 중의 으뜸으로 꼽히는 ‘모죽(毛竹)’은 씨앗을 뿌린 뒤 무려 5년 동안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정성껏 물과 영양분을 주어도 손가락만 한 죽순 상태로 감감무소식이다. 인내심이 밑천 난 이들이 포기하고 돌아설 즈음, 5년이 지난 모죽은 하루에 80cm씩 무서운 속도로 자라기 시작한다. 단 6주 만에 30m의 울창한 대숲을 이루는 기적을 선보이는 것이다.

​모죽은 지난 5년의 침묵 동안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 사방 수십 미터로 단단히 뿌리를 뻗으며, 거대한 성장을 받쳐줄 내실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의 정책이나 시대의 전환기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눈앞에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시급히 국정의 방향을 틀거나 조바심을 내어 제 살 깎아먹기식 정치 공방에 몰두할 일이 아니다.

진정한 개혁과 통찰은 당장의 실적보다 땅 밑에서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는 깊은 침묵의 시간을 요한다.

​정치권이 매일 겪는 대립의 구조 또한 ‘갈등(葛藤)’이라는 단어의 본래 뜻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칡(葛)은 시계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만 줄기를 틀어 올라가고, 등나무(藤)는 시계 방향인 오른쪽으로만 줄기를 감아 오른다. 서로 다른 결을 가진 두 나무가 한자리에서 만나면 줄기가 얽히고설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상대방의 결을 무시한 채 내 방향으로만 돌아오라 강요할 때 생기는 현상이 바로 갈등이다.

​그러나 생태학적으로 칡과 등나무는 모두 토양에 질소를 고정해 황폐한 땅을 비옥하게 살려내는 ‘콩과 식물’이다. 서로의 본성과 결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그 얽힘은 파괴가 아니라 산을 푸르게 만드는 생명의 에너지로 승화된다. 소나무가 상처를 입었을 때 내뿜는 송진이 세월을 견뎌 마침내 영롱한 보석 ‘호박(琥珀)’이 되듯, 그리고 참나무가 스스로를 비워 숲속 온갖 생명의 터전이 되어주듯, 정치의 본질 또한 서로 다른 이견을 견뎌내고 내실을 다져 국민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데 있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당장 눈앞의 승패와 작은 성과에 연연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지는 않은가. 칡에게 오른쪽으로 자라라 강요하고, 등나무에게 왼쪽을 종용하는 억지와 독선의 정치는 결국 모두를 비틀어 말라 죽게 할 뿐이다.

​정치인과 정책 위정자들은 모죽이 땅속에서 보낸 5년의 시간에 주목해야 한다. 상대를 부인하는 소모적 정치 헛힘 쓰기를 멈추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의 미래 기초를 다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름을 틀림으로 치부하지 않고 결을 인정하는 협치, 그리고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국가의 내실을 튼튼히 다지는 인내의 정치가 절실한 시점이다. 단단하게 뿌리내린 모죽처럼, 우리 정치도 이제 스펙터클한 비상(飛上)을 위해 내면의 깊은 절제와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서울=정종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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