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내장산이 펼쳐놓은 어느 여름날

채백령

공유
기사 대표 이미지

[새전북신문] 강렬한 햇살을 핑계로 살인을 저지른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을 떠오르게 하는 폭염은, 입추(立秋)까지도 무시해 버린다. 폭염이 뿜어내는 그 뜨거운 열기마저, 숲속 나무들은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 푸르게 우거져 간다. 타들어 가는 목마름과 소나기의 상처를 묵묵히 견뎌내며, 풍성한 열매와 다음 계절을 위해, 치열하게 생명의 기운을 모으는 경이로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용케도, 짜증 버튼의 찜통더위를 식혀주고 지친 마음을 다독여 주는 고즈넉한 숲 그늘이 지척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감내하며, ‘내장산 오솔길’에 들어섰다. 진초록 선율이 흐르는 시원한 바람이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효자 아들이, 구순 엄마를 태우고 오는 휠체어 소리가 경쾌하다. 어릴 적, 아들의 손을 잡고 세상을 보여주셨듯이, 이제는 훌쩍 커 버린 아들이 노모를 모시고 웃음 코드를 맞춰준다. 느닷없이, 허기진 먹구름 하나가 후드득 소나기를 한바탕 퍼붓고 줄행랑이다. 푸석한 흙길에, 금세 올망졸망 명경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숨은 그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새, 정자에 날개가 돋아 승천했다는 전설로 이름 붙여진 '우화정'이, 발길을 머물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화정 연못에 비친 데칼코마니 풍경에 더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뭘까!, 잔잔한 물 위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똥을 갈기며 날아간다. 물속에서 노니는 푸른 나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내, '누리장나무‘의 꽃향기를 흠흠 거리며, 종이접기 달인이 접어놓고 갔을 것 같은, ’ 빨간 다알리아 꽃‘을 담으려는 구경꾼들의 셔터 소리로 북새통을 이룬다. 대책 없이 뜨거웠고, 눈부셨던 젊은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저 멀리 ’홀딱 벗은 백일홍‘도 자글자글 진분홍 웃음을 느긋하게 날린다.

잠시 숨을 고르고, 불교의 108 번뇌 의미로 조성된 ‘단풍 터널’을 맨발로 걸었다. 우듬지 끝, 짝을 부르는 매미들의 절절한 구애로 숲이 왁자하다. 소나기를 냅다 퍼붓는 착각을 일으키지만, 그 뒤편에는 묵직한 침묵이 흐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지키기 위한 ‘안의, 손홍록’등, 정읍 선비들의 비장함이 서린, 행렬을 기리는 것은 아닐까!

내장산 대웅전에 오르기 전, 묵묵히 서 있는 ‘기쁨조 오색 단풍나무’도 뙤약볕을 이겨 낼 수는 없었나 보다. 냉큼, 축 늘어진 초록 단풍 가지를 올려 ‘펄럭 부채’로 활시위를 당기 듯 깨웠다. 보답이나 하듯, 어느새 청량한 바람 한 자락을 이끌고 와, 거친 땀을 빛의 속도로 닦아 준다. 기세 좋은 여름은, 그렇게 진초록 음계를 경쾌하게 두드리며 야무진 문장으로 여물어간다.

결국, 우리는 자연 속에 존재하며, 자연 또한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기에 본질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대가 없이 아늑한 그늘을 선사해 주는 나무 아래서, 숲이 가르쳐 주는 순리와 겸허를 배우며, 귓가를 간지럽히는 초록의 낮은 노랫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본다. 총총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내장산 깃대종’인 ‘화려한 금속광택의 비단벌레’와, 탱고 춤을 추며 스러져가는 여름밤을 탐닉하고 싶다.



채백령 수필가는



문학광장 수필부문 등단

문인협회 정읍지부 회원

문학광장 회원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