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독립운동가 김영원 열사 추모제가 26일 오전 10시 30분 임실 운암면 삼요정에서 열렸다.
3·1 만세 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삼혁당 김영원 선생은 철종 4년(1843년) 8월 5일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 시목동에서 김성집과 진주하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화경, 도호는 원암이며, 세 번째 호는 삼혁당이다.
본관은 경주인 김영원 선생은 3살 때 부친을 여의고, 15살에 모친마저 별세했다. 친형인 김학원(일명 덕희, 1845년, 후일 임실접주로 동학혁명과 갑진개혁 운동에 참여)과 함께 유년기부터 농사일하면서도 주경야독하는 향학열로 그의 학문은 제자 백가설(諸子百家說)에 이르렀다.
선생은 민족정신과 애국 교육을 위한 후학양성에 매진하고자 1883년(계미년) 봄에 우국 우민의 일념으로 사재를 내어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 선무봉 아래 후일 기미년 3.1 독립만세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삼요정(三樂亭)을 세웠다. 임실 지역 3·1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삼요정이라는 이름은 첫째 산과 물이 잘 어울려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고, 둘째 학문을 연마하기에 좋은 곳이며, 셋째 애국정신을 고취하기에 좋은 곳이라는 뜻이라는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선생은 삼요정의 문하생이었던 박준승, 양한묵 등 두 제자를 민족 대표 33인으로 참여케 하고, 자신은 전라북도 3.1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임실 지역 책임을 맡아 동지들과 함께 삼요정에 모여 비리 연락 및 화합, 밀의 등 3·1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실행하다 왜경에게 체포돼 1년 형을 선고받고 왜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안타깝게도 1919년 8월 26일 순국했다.
선생의 우국 우민의 정신은 삼혁당(三革堂)이라는 호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는 첫째 반외세, 반봉건의 기치를 내건 동학혁명에 참여했고, 둘째 1904년(갑진년)에 자기 머리를 깎고 스스로를 혁명했으며, 셋째 민족 독립을 위해 3·1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여 3번의 혁명을 이룩했다는 뜻을 갖고 있다.
민족교육의 요람인 삼요정(三樂亭)은 선생의 옥중 순국 후 독립운동의 발상지라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1921년 강제 철저됐다. 훗날, 임실군이 선생의 민족교육과 애국애족의 출발지로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삼고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2002년 10월 29일 지금의 자리에 삼요정을 복원했다. 정부는 선생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러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현재 국가보훈처는 2003년 12월 8일 삼요정을 현충시설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선생의 손자 김창식 회장 등 유가족, 임실군, 임실군의회 외에 많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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