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전시를 보고 나오다 굿즈 숍 앞에서 발길이 멈춘 적 있나? 이제 뻔한 기념품 대신 국립현대미술관 굿즈를 선물 리스트에 올려둘 만큼 선택지도 꽤 넓어졌다. 소장품을 패션 아이템으로 옮긴 스카프부터 한국적인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티팟, 책상 위에 두기 좋은 디자인 오브제까지. 3만 원 안팎의 부담 없는 선물을 찾는다면 박래현 작가의 작품을 테이블웨어로 옮긴 ‘여인 잔, 여인 접시’를 눈여겨보라.
컬러 포인트를 즐기는 이에게는 홍승혜 작가의 작품 <파편>에서 출발한 실크 트윌리가 제격이다. 외국인 친구나 색다른 집들이 선물을 찾는다면 갓과 도깨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국적인 디자인의 티팟을 추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식탁 위에서 만나는 방법도 있다. 박래현 작가의 ‘여인’을 이름에 담은 잔과 플레이트로 부부잔 2개, 플레이트 1개 또는 두 가지를 함께 구성한 세트 중 선택할 수 있다.
잔은 87×87×40mm, 플레이트는 250×120×15mm 크기이다. <여인>은 1942년 제작된 박래현 작가의 초기 여성 인물화로, 등을 비스듬히 보인 인물과 손에 든 종이학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결혼이나 집들이처럼 두 사람이 함께 쓸 선물을 찾을 때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격 27,000원부터 시작한다.
박화백이 1942년 일본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재학 시절에 그린 ‘여인(종이에 채색, 94.4×80.6㎝,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은 한복을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담은 초기 인물좌상 작품으로, 당시 여성 인물화에서는 드물게 뒷모습을 선택해 독특한 구도와 사색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한복을 입고 신식 머리 모양을 한 젊은 여성이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어깨 뒤 쪽에서 비스듬히 잡았다. 왼손으로 턱과 뺨을 괸 채 수그린 뒷모습은 이 여성이 뭔가 착잡한 상념에 잠겨 있음을 암시한다. 보슬보슬한 감촉이 손끝에 만져질 듯 곱고 정결한 색채 표현이 감탄스러운 가운데 머리카락의 검은색조차 화사하다. 촉각적인 은은한 색조, 간결한 형태감과 여백의 설정이 화면 속 인물에게 몰입하게 한다. 팔꿈치 아래로 보이는 오른손에는 봉숭아꽃물로 손톱을 물들인 엄지와 검지로 연노란 종이학을 쥐고 있다. 이 그림의 주제는 종이학으로 상징되는 어떤 소망을 고민하는 한 한국여성이다. '여인'은 1942년 박래현이 일본 도쿄의 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재학할 때 작품이다. 스물세 살 박래현 자신의 모습일 것 같다.
'여인'과 함께 박래현의 유학시절 그림 중에는 중국소녀, 일본소녀 등 여성 인물상이 있어 같은 학교를 다닌 네 살 아래 천경자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등 가족을 모델로 삼은 것과 대비된다.
“그동안 우리는 박래현을 잘 몰랐다”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작가는 알아도 우향 박래현(1920~1976)이란 작가를 잘 알지 못한다. 미술 교과서에서 그의 작품을 본 적 있거나, 미술을 전공했다는 이들도 매한가지다. 박래현이 추상화와 태피스트리, 판화를 넘나들며 작업했다는 사실에, 그가 네 자녀의 엄마였으며 오십 대 중반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치열하게 작업했다는 사실에도 놀란다. 이른바 ‘작가 박래현의 재발견’이다.
평남 남포에서 태어나 군산에서 성장한 박래현은 동양화, 판화, 태피스트리 등 매체 간 경계를 넘나든 선구적 여성 작가이다. 1937년부터 경성관립여자 사범대학에서 수채화와 동양화를 배우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귀국 후 1946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남편 김기창(1913-2001)과의 부부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195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수상, 1957년 백양회 창립 등 한국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고,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대표로 참여한 뒤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뉴욕 프랫 그래픽 아트센터와 밥 블랙번 판화 공방에서 판화를 익힌 박래현은 이후 동양화, 판화, 태피스트리를 융합한 작업을 전개했다./이종근기자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