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서양화가 이순재

공유

[새전북신문]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전북 서양화 선구자들을 발굴하고 지역 화단의 주체적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뜻깊은 전시가 열렸다.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미술관 본관 2전시실에서 소개된 ‘조선미술전람회 전북 풍경화’ 전은 단순한 작품 나열을 넘어 전북 서양화 화단의 형성과 ‘풍경’ 연구를 집대성한 기록 연구 성격의 전시다.

지난 5일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색지장 김혜미자 선생의 작업실에서 청람(靑嵐) 이순재(李淳宰, 1904~1958)의 막내딸 이정미 여사를 만났다. 청람(靑嵐)은 한자 '푸를 청(靑)'자와 '산기운 람/남(嵐)'자를 써서 "멀리 보이는 산의 푸르스름한 아지랑이 같은 기운" 또는 "푸른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뜻한다. 그녀는 올해 84세로, 과거에 전북일보 문화부기자 생활을 했단다. 그녀의 오빠 전북리뷰 발행인 이정열 선생은 필자가 오랫동안 만났지만 이화백의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가 2012년 86세로 별세, 이화백을 증언해줄 사람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이여사를 만난게 꿈만 같다. 김미선 전북대 강의전담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과 필자가 쓴 기사를 보여주었더니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중학교 2학년때 이화백이 별세해 기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의 작품 1점을 소장, 얼마 전, 전북도립미술관에 서류를 냈지만 매매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이번 전시회에서 이화백이 출품, 1928년 제7회 입선한 '이른 봄'을 보았다.

이화백은 지난 1904년 전주 완산동 일대, 사람들 사이에서 ‘팽나무골’이라 불리던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효령대군의 후예이자 전주이씨 명문가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문인화와 산수화, 사군자에 익숙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 '이른 봄'은 전통미술의 영향 속에서 서양화에 동양화풍의 산수화의 미학을 절충하며 심미적 이상향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는 김미선 전북대 강의전담 교수의 설명.

그는 전북 최초의 서양화가로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 도쿄의 미술전문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는 사실은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그러나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전주에 돌아와 동광신문과 전북일보에서 삽화를 그렸다. 내선일체가 강화되면서 한글 말살 정책으로 동광신문이 폐쇄되면서 삶은 더 막막해졌고 결국, 전주에서 영화극장 간판을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1929년 제8회 조선미전엔 '신학교의 입구'로, 1931년 제10회 조선미전엔 '만춘의 농가'로 각각 입선을 차지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조선미전, 1922~1944)》의 전라북도 지역 입상자 가운데 손용주(5회), 김용해(5회), 이순재(7회), 조화석(8회), 김영창(10회), 조한백(11회), 강판상(11회), 권우택(11회), 정대문(11회), 권영준(12회), 권오동(17회), 윤후근(18회), 강찬경(18회), 고화흠(18회), 추교영(18회), 서정주(18회), 이경훈(18회), 박병수(18회), 김치민(19회), 홍건표(19회), 승동표(19회), 류경채(19회) 등으로 구분된다. 김영창은 5회(10회, 15회, 16회, 22회, 23회)를 비롯, 이순재는 3회(7회, 8회, 제10회), 조화석은 3회(8회, 10회, 11회), 권영준 3회(12회 ,16회, 17회), 고화흠은 2회(18회, 19회), 박병수는 2회(18회, 19회) 등으로 분석됐다.

이순재는 해방 이후 전북 2호 서양화가인 박병수와 함께 ‘동광미술학교’라는 아틀리에를 개설하는 등 지역의 서양미술 정착과 후배 양성에 성과를 이루었다.

김영창, 조병희, 하반영, 이복수, 천칠봉 등이 서양화 데생에서부터 소묘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전북은 여전히 서양 문물에 어둡고 개화가 더뎠던 곳으로 일본미술대학까지 가서 유화라는 새로운 예술을 공부한 그를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는 배경이 못됐다. 시대적으로 서양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풍토와 작품에 대한 주체 의식의 약화 등은 이순재를 선구자에 그치게 했다. 그는 결국 화가의 길을 포기하게 되고 한국전쟁 이후 전주에서 고아원장을 지내게 된다. 오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진환(1913~1951) 작가의 아들 진철우 전 언론인, 천칠봉(1920~1984) 작가의 아들 천광호 화백, 하반영(1918~2015) 작가의 아들 하교홍 화백에게 안부 전화를 하고 싶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