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한가운데]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전통과 예술을 오늘의 언어로 살아 있도록 지켜야 할 관계와 사람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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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읽겠다는 문장으로 이 연재를 시작했다. 그 문장은 선언이었지만 답은 아니었다. 무엇을 다시 읽을 것인지, 어떤 언어로 읽을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은 채였다. 다섯 편을 지나며 그 막연한 선언은 조금씩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었다.

돌아보면 그 질문은 세 겹으로 쌓였다.

첫 번째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한지는 종이가 아니라고 썼을 때, 그리고 먹은 어디로 흐르는가를 물었을 때, 전북이 오랫동안 다뤄온 것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감각과 기술, 삶의 방식이 있었다. 한지와 먹은 전북이 무엇을 축적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자산이었다.

두 번째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출발점에서 중심으로’ 향하는 글에서는 전북을 늘 주변부에서 바라보던 익숙한 시선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시작했느냐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만들어내고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느냐일 것이다.

세 번째는 ‘누가 만드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지역은 어떻게 중심이 되는가’를 생각하면서 결국 시설이나 예산만으로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시민이 참여하고 기획자가 그 참여를 연결하며,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이어갈 때 문화는 한 번의 행사를 넘어 다음 시간으로 이동한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과 경험을 우리는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여러 전시와 사업을 지나오면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일보다 이미 시작한 것을 계속 이어가는 일이 더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전시가 열렸다는 사실만으로 문화가 쌓이는 것은 아니다. 한 작가의 작업이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전시가 또 다른 기획을 낳고, 관객의 경험이 다음 만남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시간이 축적된다.

좋은 작가를 발견하는 것만큼 그 작가의 다음 작업을 기다려주는 일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지원했다면 지원하는 순간뿐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결국 문화는 사업의 횟수나 결과의 크기보다 사람의 시간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획자에게도, 작가에게도 그런 기다림이 필요하다. 한 지역의 문화가 자기만의 색을 갖기 위해서는 사람과 경험이 쌓이고, 서로의 작업이 기억되고, 때로는 실패했던 시도까지 다음 사람에게 경험으로 남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건물일 수도 있고 작품일 수도 있다. 전시와 활동의 기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일을 해오면서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남기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지와 먹을 남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할 사람을 남기는 것. 전시 하나를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경험이 다음 전시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가 계속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결국 남겨야 하는 것은 사람이고, 경험이고, 그 둘 사이에서 만들어진 관계인지도 모른다.

전북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전통과 예술이 있고, 자신의 자리에서 작업을 계속해온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가보다 이미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의 관계를 어떻게 깊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오래 이어갈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업을 할 것인가보다 어떤 경험이 다음 시간으로 넘어갈 것인가.

처음에는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읽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해 다섯 편의 글을 지나고 보니 그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무엇으로 남길 것인가.

어쩌면 이 글들을 쓰면서 찾고 싶었던 답도 결국 이 질문 속에 있었는지 모른다.





/김선남(재단법인 청목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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