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의 유형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추락하고, 기계에 끼이고, 차량이나 장비에 부딪히고, 전기에 감전되는 사고가 여전히 반복된다. 새로운 형태의 위험이 계속 등장해서라기보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위험이 현실의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왜 비슷한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 상황을 살펴보게 된다. 작업자가 안전수칙을 지켰는지,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했는지, 작업 과정에서 부주의한 행동은 없었는지를 확인한다. 물론 이러한 사항은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중요하다. 실제로 작업자의 순간적인 판단이나 행동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를 예방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작업자가 왜 위험한 상태에서 작업하게 되었는지, 사업장은 그 위험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필요한 안전조치는 마련되어 있었는지, 그리고 마련된 조치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산업현장의 위험은 대부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높은 곳에서 작업하면 추락할 위험이 있고, 기계와 설비를 다루면 끼이거나 협착될 위험이 있으며, 전기설비를 취급하면 감전의 위험이 있다. 지게차나 덤프트럭과 같은 장비와 근로자가 같은 공간에서 작업한다면 충돌이나 협착의 위험 역시 예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위험을 사전에 찾아내고 적절한 안전조치를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산업안전의 출발점은 위험성평가라고 할 수 있다. 작업현장의 위험요인을 사전에 확인하고 그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한 뒤 필요한 개선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험성평가서를 작성하고 작업계획서와 점검표를 갖추었다고 해서 안전관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서류에 적혀 있는 안전조치가 실제 작업현장에서 실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면 그 원인을 찾아 개선하는 과정까지 이어져야 한다. 현장을 다니다 보면 안전관리에 필요한 서류는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는데 정작 현장에서 그 내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안전교육을 실시했다는 서명은 있고 작업계획서도 작성되어 있지만 실제 작업방법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문서를 만들어도 사고를 막기 어렵다.
안전관리에서 문서가 중요한 이유는 문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 정하고, 누가 확인할 것인지 책임을 명확히 하며, 발견된 위험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체계화하기 위해 문서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안전관리의 성패는 ‘서류가 있는가’가 아니라 ‘그 내용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할 것은 안전을 바라보는 경영의 관점이다. 생산일정이나 공사기간이 촉박하고 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안전조치는 뒤로 밀리기 쉽다. 작업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이유로 절차를 생략하거나,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다는 이유로 위험요인을 그대로 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위험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안전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위험이 현실화되지 않았을 뿐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이후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법의 목적이라고 이해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필요한 인력과 예산, 조직을 갖추고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지속적으로 확인·개선하면서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관리하는 데 있다. 안전을 현장 담당자 몇 사람의 업무로 남겨두지 않고 경영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중요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고의 책임을 경영자에게 돌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산업재해는 작업자의 행동, 작업방법, 설비의 상태, 관리감독, 교육, 작업환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따라서 사고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책임의 범위를 판단하는 것은 개별 사고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사고를 예방하는 관점에서는 사고 직전 작업자의 행동만을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행동이 이루어지기 전에 위험을 발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지, 관리감독자는 필요한 조치를 확인했는지, 사업장의 안전관리체계는 그러한 위험을 찾아내고 개선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많은 중대재해는 매우 복잡한 기술적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추락할 위험이 있는 곳에서 필요한 추락방지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기계의 위험부분에 필요한 방호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차량계 기계와 근로자의 작업동선이 적절히 분리되지 않는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지켜지지 않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결국 중대재해 예방의 핵심은 특별하고 거창한 제도를 새롭게 만드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필요한 조치를 정하고, 현장에서 실행하며,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다시 개선하는 기본적인 관리가 끊임없이 반복되어야 한다.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위험을 몰라서라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위험을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들은 많은 안전 관련 규정과 문서를 만들었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얼마나 많은 서류를 갖추고 있는가보다 그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안전관리의 수준은 서류의 양이 아니라 현장의 변화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의 안전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위험을 발견하고, 개선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매일의 작업 속에서 반복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사람과 조직, 제도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경영과 관리의 역할이다.
중대재해는 현장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힘은 현장과 경영을 연결하고, 안전조치가 실제 작업 속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제대로 된 관리체계에서 나온다.
/윤진식(신세계노무법인 대표 노무사·법학박사)
[오늘의길목]중대재해는 왜 반복되는가
서류 속 안전을 넘어 현장의 작동으로 문서 관리 벗어나 실질적인 위험 통제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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