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신세훈(申世薰) 시인(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1941년 경북 의성출신으로,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연극영화과를 수료했다.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젊은 시절 육군 소위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며, 현지에서 직접 체험한 전쟁과 인간의 모습을 시로 기록했다. 그 작품들을 묶어 1965년 11월 현역 장교 신분으로 첫 시집 <비에뜨남 엽서>를 출간했다.
그는 '대장 부리바', '남이 다 하고난 질문' 등 35 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고인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민조시(民調詩)’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민조시란 우리 한민족의 민간 장단으로 흘러 내려오는 율조의 소리를 문자의 뜻 위에 얹어 만든 정형시로, 우리말의 소리마디를 3·4·5·6조의 정형률에 맞춘 것이다.
‘ 민조시’를 정착시키기 위해 했던 노력했다. 그는 “1990년 경에 ‘한국일보 문화센터’ 강의를 하다가 ‘민조시’라는 이름을 정했다”며 “처음에는 민조시 제목을 ‘3·4·5·6조’로만 적었는데, 글을 보내는 잡지나 신문에선 계속 ‘민조시’란 말을 삭제시켰다. 그래서 나중에는 부제처럼 적으니까 삭제하지 않아 그대로 ‘민조시’라는 이름을 정착시키기 시작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지난 80년대 초부터 '민조시(民調詩)'를 꾸준히 발표해온 그가 2000년 그동안 발표된 작품을 모아 최초의 민조시집 '3·4·5·6調'(천산)를 펴냈다.
민조시를 새로운 민족 정형시로 자리매김할 것을 선언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담고있는 시집이다.
“달바다 / 고요눈매 / 길어가신 이, // 두레박 가득히. / 별빛을 가득히. //아흐야 다리렁. / 누리야 다리렁. //...” (시 '민조시·7' 중에서)
민조시가 민족 고유의 율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번 시집의 작품들에서는 민족적인 리듬감이 잘 살아나고 있다. 마치 시조처럼 3·4·5·6조의 리듬을 타면서도 자유스럽게 붙이고 떼어낸 시어들은 시인의 말대로 현대시에 가까운 언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아가야, / 내 살결로 / 너를 빚었다, / 슬픈 웃음으로. // 아가야, / 너는 별빛 / 꽃을 보느냐, / 울음도 꽃이다, / 바람도 붉은 꽃. //...” (시 '민조시·20' 중에서)
시인은 향토색 짙은 시어와 음율을 담아낸 '민조시' 50편을 이 시집을 통해 소개하면서 “민조시가 우리민족의 새로운 정형시로 널리 퍼져 애용되고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민조시 외에도 시인은 ‘청소년문학’ 개척에도 힘썼다.
지금은 ‘청소년문학’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지만 30 여년 전만 해도 따로 분류돼 있지 않았다. 물론 그 이전에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같은 글이 있었으나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않았고 과(科)도 나눠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시인은 ‘청소년문학’이라는 분과를 한국문인협회에 개설했다.
그가 발간한 <자유문학>은 1991년부터 계간지로 시작해 벌써 3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다.
그는 제3회 시문학상, 제10회 예총예술문화 대상(문학부문), 제10회 이설주문학상, 제24회 중앙대문학 본상, 인헌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중앙대.홍익대.명지대 강사를 역임했으며ㅡ 한국PEN 부회장(2회), 한국현대시협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2회), 한국 현대시인협회 이사장,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 한국시낭송회 대표 , 6.15민족 문학인 협회 남측 부회장 등을 지냈다.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02호실으로, 발인은 20일 오후 4시이며, 문의는 02-2072-2010./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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