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임진왜란 웅치전적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매년 음력 7월 8일이면 전북도청에서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1592년 음력 7월 8일, 바다에서는 이순신의 한산대첩이 펼쳐졌고, 육지에서는 전라도의 관군과 의병이 전주로 향하는 왜군을 막아섰다. 이 때문에 웅치전투를 흔히 ‘육상의 한산대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웅치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한 번의 전투와 하나의 장소에만 한정해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그 가치를 축소할 수 있다.
당시 왜군에게 전라도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지역이었다. 금산을 점령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부대가 진안에서 전주로 진격하자 전라감사 이광은 나주판관 이복남, 김제군수 정담, 해남현감 변응정, 의병장 황박 등을 웅치에 배치했다. 관군과 의병이 함께 구축한 방어선은 험준한 지형을 활용해 왜군의 진격을 지연시켰고, 정담은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웅치에서의 전투는 전술적으로 조선군이 고개를 내주었지만, 왜군 역시 상당한 타격을 입으면서 전주 진격에 부담을 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다음이다. 웅치에서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전주 방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웅치를 돌파한 왜군은 전주 동쪽의 안덕원까지 접근했고, 이곳에서 황진 등이 이끄는 조선군과 다시 맞닥뜨렸다. 결국 웅치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은 왜군은 안덕원에서도 전투를 치른 끝에 전주성 점령이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금산으로 퇴각했다.
최근 연구에서는 안덕원전투를 전주 방어라는 군사적 목적과 시간적·공간적 연속성에서 웅치에서의 전투와 연결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 제기되고 있다. 즉, 웅치는 단독으로 끝난 전투가 아니라 전주를 지키기 위해 이어진 일련의 방어전 가운데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이어 금산으로 퇴각한 왜군이 전주성 점령을 다시 시도하면서 이치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웅치전투에서 활약했던 군사들이 전라도 방어태세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이치에 배치되었고, 권율과 황진이 지휘한 조선군은 왜군을 격퇴했다. 웅치와 이치에서 이어진 방어전은 왜군의 전라도 진출을 저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웅치전투와 이치전투는 개별 전투가 아니라 전라도 관군과 의병이 연속적으로 수행한 호남 방어의 과정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의 역사다. 웅치에서 싸운 나주판관 이복남은 훗날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어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을 지키다 다시 전사했고, 황진 역시 이치에서 왜군을 막은 뒤 1593년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했다. 이처럼 웅치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행적을 따라가면 웅치는 하나의 점이 아니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관통하는 역사적 흐름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이제 웅치전투와 그 장소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웅치에서 누가 싸웠고 누가 전사했는가’에 머무르지 않고, 왜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치와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리고 이후 호남의 관군과 의병들이 행주산성·진주성·남원성 등에서 어떻게 다시 국난 극복의 전선에 섰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한산대첩이 바다에서 왜군의 진출을 막아 조선 수군의 전략적 우위를 확보한 전투였다면, 웅치와 이치에서 이어진 육상의 방어전은 왜군의 호남 진출을 저지하고 전라도라는 후방의 기반을 지켜낸 싸움이었다. 오늘 웅치에서 올리는 추모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한 고갯길에서 전사한 이들의 이름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키려 했던 전라도와 이후 이어진 수많은 전투,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다시 전장으로 나아간 사람들의 역사를 함께 기억해야 한다.
국가 사적 임진왜란 웅치전적은 단순히 한 번의 전투가 벌어진 장소가 아니다. 국난 앞에서 관군과 의병이 하나의 방어체계를 이루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던 현장이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관통하며 호남을 지켜낸 수많은 전투와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사의 공간이다. 이제 웅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함께했던 사람들의 의지와 연대, 그리고 호남 방어의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 현장으로 기억되어야 한다./장기재(완주군 국가유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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