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거인이 남긴 역사 의무를 기억하자

‘호남의 마지막 별’ 이석규 지사 별세 지사와 후손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국가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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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호남 지역의 유일한 생존 애국지사였던 이석규 선생이 제81주년 광복절을 단 이틀 앞둔 지난 8월 13일, 향년 100세를 일기로 끝내 타계했다.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민족의 자존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위대한 거인의 전설이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의 전 생애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숭고한 저항 정신을 온몸으로 증명한 등불 그 자체였다. 광복의 기쁨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날아든 고인의 비보는 우리 사회에 깊은 슬픔과 함께, 독립지사와 그 후손들에 대한 예우를 어떻게 다해야 하는가라는 무거운 책무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고인의 삶은 암흑기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낸 청년 선비의 기개였다. 1926년 완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광주사범학교 재학 시절,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서도 항일 비밀결사인 ‘무등독서회’를 조직했다. 금서로 지정된 한글 서적을 탐독하며 동지들과 민족의식을 고취했고, 독립선언문 필사와 태극기 제작, 항일 전단지 배포 등 목숨을 건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더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밀 연락원으로서 지령을 전달하고, 연합군의 국내 상륙 시기에 맞추어 무장봉기까지 계획했던 대담함은 청년 이석규의 조국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거사를 앞두고 조직이 노출되어 혹독한 옥고를 치렀지만, 그가 뿌린 저항의 씨앗은 마침내 해방의 기적을 피워내는 밑거름이 됐다.

해방 이후 선생이 걸어간 길 역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선생은 출옥 후 교단에 서서 평생을 후학 양성에 헌신하였으며, 정년퇴임 이후에도 '역사 바로 세우기'에 평생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활동한 대가로 해방이 됐다고 생각할 적에 보람을 느낀다, 헛되지 않았다”던 생전의 담담한 고백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결코 값없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한다. 2010년 정부가 수여한 대통령 표창은 그의 위대한 희생에 비하면 오히려 소박한 헌사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지사의 별세는 단순한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우리 역사에서 '항일 독립 1세대'의 직접적인 증언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엄중한 신호다. 선생의 타계로 이제 전국에 생존한 애국지사는 단 3명밖에 남지 않게 됐다. 역사의 산증인들이 우리 곁을 떠나갈 때마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숭고한 기억과 가치를 어떻게 온전히 계승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과제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독립지사 본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뜻을 이어받아 이 땅을 살아가는 후손들에 대한 국가적 예우 문제다.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해묵은 자조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애국지사의 후손들이 정당한 보상과 사회적 존중을 받지 못한 채 경제적 고통이나 소외감을 겪는다면, 어느 누가 유사시에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는가.

애국지사와 그 후손들에게 최고 수준의 예우를 다하는 것은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당당한 의무이자, 그 나라의 도덕적 수준과 품격을 가름하는 절대적 척도다. 이제 남겨진 자들의 의무는 명확하다. 이지사가 온 삶을 던져 지켜낸 민족의 자존심과 공동체를 향한 헌신을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는 일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몇 안 남은 생존 지사들에 대한 의료·복지 예우를 전방위로 강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자부심을 품고 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주거·교육·경제적 지원 체계를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함이 마땅하다. 호남의 마지막 별은 졌지만, 그와 그의 후손들이 지켜온 독립의 정신은 결코 꺼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이정표로 남아야 한다. 조국의 푸른 하늘 아래 모든 고단함을 내려놓으시고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머리 숙여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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