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가맥은 75년의 역사 간직

‘전주가맥축제’ 보도 오보 수두룩 역사는 1980년대가 아닌 1950년대로 해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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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2026 전주가맥축제’와 관련 상당수의 언론 매체들이 전주 가맥의 역사가 1980년대로 보도, 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전주 가맥은 지금으로부터 75년전인 1950년대부터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목 넘김이 좋은데요? 탄산감은 살아있는데 더부룩한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지난 7일 저녁 전북대학교 교정. 고칭에서 왔다는 김모 씨는 얼음 수조에서 막 꺼낸 맥주병을 기울이며 이 같이 말했다. 그가 마신 맥주는 제조일자 '8월 7일'이 적힌, 그날 아침 막 생산된 테라였다.

전주의 독특한 술 문화인 '가맥(가게맥주)'을 주제로 한 '2026 전주가맥축제' 현장이다. 39도에 달하는 폭염도 막지 못했다. 전주에서 열린 '2026 전주가맥축제'는 사흘간 12만6,000명(주최측 집계)이 몰리며 역대 최다 관람객 기록을 새로 썼다. 당일 생산한 맥주를 앞세운 지역 고유의 '가맥 문화'와 지역 상생 모델이 전국 관광객을 끌어들였다는 평가다.

전주는 축제가 열린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여름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가맥축제는 좌석 규모를 기존 5,000석에서 7,000석으로 늘리고 폭염이 극심했음에도 누적 방문객 12만6,000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한 언론매체는 '1980년대 동네 슈퍼에서 저렴한 맥주와 안주를 즐기던 정취에서 출발한 가맥은 이제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 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고 했지만 명백한 오보다.

전주 가맥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전주 가맥(가게 맥주)의 원조는 6·25 전쟁 중에 전북경찰국 공보실 경사였고, 후에 영화 피아골(이강천 감독, 1955년)의 시나리오를 쓴 김종환의 자서전 '수분낙도(守分樂道, 탐진, 1993, 219쪽)에서 찾을 수 있다.

“1950년 7월 19일 오후 5시경, 죽음의 거리처럼 냉랭한 시가지는 을씨년스럽고 공포감마저 감돈다. 경찰공보 사업에 협조가 많았던 친구 하반영 화백과 평소 잘 드나들던 공신상회에서 맥주 몇 병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위로하고 재회를 기약하면서 하군과 갈라서 나왔다. 가게 아주머니도 불안한 표정으로 피난 짐을 싸면서 당혹스러워하고 있었고, 우리도 금명간에 전주를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영화 '피아골'의 시나리오를 쓴 김종환이 6·25 난리 중에 장거리 후퇴를 거듭하며 9·28 서울 수복이 될 때까지 고난의 역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진중일기(陣中日記)이다.

하반영 화백과 맥주를 마신 공신상회는 후에 도일상회로 상호가 바뀌었다. 그 위치는 공보관(현 가족회관) 옆이다. 이후 도일상회는 도일슈퍼로 다시 이름을 변경했다.

“가맥이나 한 잔 하지”, “가맥집으로 가지 뭐”

전주가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 ‘가맥’은 가게에서 파는 맥주를 줄인 말이다.

소형 상점의 빈 공간에 탁자 몇 개 놓고 오징어 등 간단한 안주에 맥주를 파는 곳이다. 가맥문화는 술집은 아니지만 동네슈퍼에서 맥주를 사서 먹되, 간단한 마른 안주를 곁들여 먹는 것을 말한다.

슈퍼마켓에서 맥주를 팔면서 동시에 가벼운 안주도 함께 내주었다. 어릴적 동네 어른들께서 슈퍼마켓 앞 파라솔에 앉아 가볍게 맥주 한 두잔 기울이는 모습을 상상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전주의 독특한 술문화로 꼽히는 '가맥'은 'OO슈퍼, OO휴게실, OO편의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가맥집'들이 여러 곳 있다. 슈퍼에서 파는 과자나 라면은 물론이고, 황태구이, 오징어, 계란말이 같은 간단한 안주류도 맛볼 수 있다.

오늘, 무더위에 “가맥이나 한 잔 하지” 라고 말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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