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대기업 생활 마침표 찍고 전북 정읍서 인생 2막 연 오브제 임규오 대표
“잡풀 우거진 폐교에서 찾은 삶의 의미… 정읍의 자연으로 세상을 치유합니다”
“단순 농업 넘어 체류형 치유 인프라 구축으로 농촌 경제의 새 모델 만들 터”
도시의 숨 가쁜 속도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오다 농촌 치유 분야 전문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전 대기업 간부가 있다.
지난 2015년, 30여년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귀농을 단행한 임규오 대표(농업회사법인 구절초힐링팜㈜ · 민간정원 ‘오브제’)가 화제의 주인공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그는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며 다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성공이 아닌 ‘의미’로 채울 수 있을까?’
그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그가 향한 곳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혁명적 기상이 서려 있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의 한 외딴 골짜기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잡풀만 무성했던 척박한 땅은 연간 수만 명이 찾아와 마음을 치유하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 농촌에서, 치유농업과 체류형 관광이라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임규오 대표를 만나 그의 삶과 농촌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Q. 3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기업에서 일하신 뒤 귀농을 결정하셨습니다. 수많은 지역 중 왜 하필 정읍이었나요?
“많은 분이 은퇴 후 귀농을 생각할 때 단순한 풍류나 자연 속 휴식을 꿈꿉니다. 하지만 저는 삶의 방향성을 ‘성공’에서 ‘의미’로 재정의하고 싶었습니다.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공동체 안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했죠. 정읍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역사와 정신이 깊게 뿌리내린 고장입니다. 그 역사적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노후를 함께 걸어가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Q. 입지 조건으로서 정읍의 지리적·자연적 환경은 어떠했나요?
“치유농업을 구상하면서 입지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제가 자리 잡은 이곳은 해발 230미터의 고지대로, 숲에서 주는 유익함이 풍부합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면서도 최근 심각해진 기후변화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죠. 대도시와의 거리가 멀어 처음엔 다소 불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불편함이 자급자족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직접 건강한 천연 먹거리를 재배하고 농산 부산물을 유통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면서 도심보다 훨씬 더 균형 잡힌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Q.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 땅을 밟았을 때는 말 그대로 방치된 폐교였습니다. 잡풀만 키만큼 자라 있던 골짜기였죠. 하지만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매일같이 흙을 다지고 나무와 꽃을 한 그루씩 심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열정과 노력이 쌓이면서 무성했던 골짜기는 민간정원 ‘오브제’로 거듭났고, 농업회사법인 구절초힐링팜㈜을 설립해 경영 체계도 다졌습니다.
이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품질을 인정받아 ‘우수치유농장 정읍오브제’로 지정되었고, 6차산업 융복합 인증까지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Q. 이후 좋은 성과를 거두셨다고요.
“감사하게도 위기 속에서도 최근 3년간 매년 30% 이상의 매출과 방문객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지난해에는 약 1만 3천 명의 방문객이 이 작은 골짜기를 찾아주셨고, 올해는 2만 명 방문을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가장 큰 보람은 수치적인 성과가 아닙니다. 방문객들이 방명록에 남겨주시는 ‘이곳에 오니 가슴이 확 뚫리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한 줄의 후기입니다. 그 문장 하나가 저로 하여금 매일 아침 기쁜 마음으로 정원 일을 시작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Q. 정읍오브제에서 진행한 치유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발달장애인 단체와 함께 진행했던 9회기 치유 프로그램이 가장 가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흙을 만지거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어색해하던 참여자들이, 회차가 거듭될수록 식물을 다듬고 씨앗을 심으며 밝은 웃음을 찾아갔습니다. 그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치유농업이 단순히 농촌을 체험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치유농업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과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한 ‘필수적인 사회적 복지 자원’입니다.”
Q. 앞으로 치유 인프라 확충을 위한 계획이 있으시다면?
“현재 전북사회서비스원의 전문적인 컨설팅을 받으며 ‘치유농업 바우처 제공기관’ 등록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포함해 지역 주민 누구나 쉽게 찾아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공공적 치유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입니다.”
Q. 정원 외에도 폐교를 활용한 공간 재창조 작업도 진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시간 방치되어 있던 지역의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방문객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문화·휴식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농촌 공간이라 해서 허름하거나 미흡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방문객들이 농촌에서도 충분히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과 존중감을 받을 수 있도록 고품격 공간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는 농촌 고유의 가치와 품격을 올리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Q. 앞으로의 장기적인 비전은 무엇인가요?
“단순히 몇 시간 머물다 가는 ‘당일형 체험’을 넘어, 며칠 동안 정읍에 머물며 깊은 휴식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체류형 치유센터’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농촌의 생태 자원에 관광, 복지, 교육, 그리고 문화예술을 하나로 결합하는 융복합 산업 모델입니다. 체류형 관광이 활성화되면 지역 내 소비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창출되어 정읍 전체 농촌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Q. 인생 2막으로 귀농·귀촌을 꿈꾸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농촌은 결코 화려한 낭만만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흘려야 하는 땀방울과 육체적 노고가 반드시 수반됩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의 이동’입니다. 자연이 주는 수고로움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일이 시대적 흐름, 즉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와 맞물릴 때 농촌은 무한한 기회의 땅이 됩니다. 현대 사회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고령화로 인해 ‘치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준비된 자에게 치유농업은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분야입니다.”
용광로 같은 열정을 가진 임규오 대표가 10년 전 정읍의 해발 230미터 골짜기에 던진 도전장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은퇴 후 삶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잡목만 우거졌던 척박한 땅을 수만 명이 찾는 치유의 성지로 일구어낸 그의 궤적은, 1차 생산에 머물렀던 우리 농업이 어떻게 복지, 문화, 관광이 어우러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오늘도 그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정원의 나무와 풀꽃을 살핀다. 녹두장군의 호방한 기상이 살아 숨 쉬는 정읍의 자연 속에서, 그가 내뿜는 치유의 숨결이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전북과 정읍 농촌 경제의 새로운 앞날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서울=정종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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