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을 찾아서)"진짜 장인은 사람을 남긴다"… 손끝으로 이어온 3대, 방화선 선자장

대한민국 여성 선자장 최초 대통령상 수상 비싼 재료값에도 놓지 않는 100% 수작업 후학 양성 위한 지속 가능 전통 문화 터전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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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방화선 선자장(70)은 100% 수작업으로 전통 단선을 만들며 명인만의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왔다. 지난해 12월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 선자장으로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걸어온 길,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대나무를 깎아 부채를 만들던 할아버지, 손끝으로 이어진 3대

명인의 부채 인생은 어린 시절 뒤뜰에서 시작됐다. 명인은 "할아버지는 뒤뜰의 대나무를 베어 살을 깎고 시멘트 포대 종이를 발라 부채를 만드셨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부채와 인연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었다. 이어 "아버지인 고(故) 방춘근 명장이 일제강점기 전라감영 선자청에서 부채 제작 기술을 정식으로 전수받아 가업으로 키웠고, 내가 이를 이어받아 2대 선자장이 됐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딸인 송서희(42) 이수자가 가업을 이어가며 100여 년째 전주에서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



△대한민국 여성 선자장 최초로 대통령상을 품에 안다

명인의 이름은 최근 더 널리 알려졌다. 2025년 12월 9일 국가유산청이 주최한 제2회 국가유산의 날 기념식에서 '여성 선자장'으로서 대한민국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전통 단선 기법의 원형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가치를 넓히고, 전통 부채를 대중화하며 후학을 길러온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이에 앞서 2019년에는 밀라노 디자인위크 전시 '한국공예의 법고창신 – 수묵의 독백'에서 옻칠 부채를 선보이며 전통 단선의 아름다움으로 호평을 받았다. 2024년에는 창덕궁에서 역사상 최초로 궁중 부채 전시를 열어 작품이 역사 유물로 지정·소장되는 성과를 거뒀고, 2025년 APEC 정상회의에서는 부채 공연에 쓰인 부채를 직접 제작하고 전시를 함께 열어 국위선양에 나섰다.



△접선(접는 부채)이 아닌 단선이 원조다

명인은 인터뷰에서 단선의 전통과 그 장점을 자세히 들려줬다. "흔히 전통 부채로 알려진 접선은 유럽의 깃털부채가 중국을 거쳐 일본에서 완성된 뒤 한국으로 들어온 형태다"라며 "반면 선면이 하나로 이어진 평평한 부채인 단선이야말로 우리나라 고유의 원조 전통 부채"라고 설명했다. 과거 단선은 시원한 바람, 해충 쫓기, 아궁이 불 지피기, 햇빛 가리기, 방석, 물건 덮기 등 여덟 가지 쓰임새를 지녔다고 해서 '팔덕선(八德扇)'이라 불렸다. 그는 단선의 매력에 대해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나 형태를 제약 없이 마음껏 접목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면 전체가 하나로 이어진 특성 덕분에 제작자의 철학과 예술적 표현을 자유롭게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명인이 단선을 고집해 온 이유다. 낙엽과 연방죽 같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흑두루미선, 햇살선, 하늬선, 비녀 부채 등 다양한 창작 단선도 선보여왔다.



△천 값만 1000만 원대…그래도 놓지 않는 100% 수작업

여타 공방들이 합죽선 위주이거나 중국산 반제품을 들여와 마무리 작업만 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방화선 명인은 모든 재료를 국산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100% 전통 수작업만을 고수한다. " "부채용 천은 대구의 손정숙(85) 직조 명인에게 부탁해 수급하는데, 한 번 재료를 사 올 때마다 1000만~1700만 원이 든다"라며 "한지도 국산 최고급 한지만을 사용하고, 대나무는 담양과 함평, 경상북도 등지에서 직접 엄선하여 공수한다"라고 말했다. 인건비 부담 때문에 수작업을 고집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지만, 명인은 "2010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내 기능에 주어진 호칭이니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돈벌이 수단이 아닌 진심으로 뽑는 제자들

명인은 "경제적 목적이 아니라 전통문화와 부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을 제자로 받는다"라며 제자 양성에 대한 신념을 말했다. 장인학교 2년 과정을 이수해야 협회 가입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 과정을 통해 제자들의 진심과 열정을 검증한다. "매주 목요일 전수 수업을 여는데, 남양주와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며 배우는 학생들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했다.



△SNS 운영과 다양한 체험교육, "젊은 세대들에게 단선의 아름다움 전하고파"

명인은 젊은 세대에게 전통 단선의 멋을 알리기 위한 시도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방화선 부채공예연구실 홈페이지와 '방가몰'이라는 온라인 쇼핑몰과 SNS를 함께 운영하며 빠르게 변하는 세대 흐름에 맞춰 판매를 활성화하고 젊은 세대와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명인은 소리문화전당 내 부채체험 교육장에서 체험교육도 더 늘리고 싶다며 "어린 세대들이 반제품에 그림만 그리는 겉핥기식 체험을 하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젊은이들이 전통문화의 정서적 가치를 배우고 그 맥을 이어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작품이 아닌 사람을 남기고 싶다"…전수관 건립으로 그리는 미래

명인이 전주에 남아 전통을 지키는 이유는 명확하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만큼, 국가 지정을 받는 것보다 전북 전주 현장에서 제자들과 함께 단선을 만드는 삶에 더 큰 가치를 둔다는 것이다. "진짜 장인은 작품을 남기는 것도 맞지만, 사람을 남기고 가는 것"이라며 "커피 한잔하다가도 영감이 떠오르면 잊기 전에 벽이든 냉장고든 가리지 않고 적어두고 남은 시간동안 더 많은 것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다음 목표를 묻자 명인은 "지속 가능한 전수관을 건립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시중의 일회성 체험이 아니라 뼈대를 잡고 종이를 바르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겪어야 진짜 전통 체험이라는 것이다. "스마트폰만 보는 아이들이 흙과 풀을 만지며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교육장, 제자들이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 전통을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을 남기고 싶다"고 전했다.

할아버지의 뒤뜰 대나무에서 투박하게 깎이던 부채는 긴 세월을 거쳐 선자장의 고집 속에 3대째 찬란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작품이 아닌 사람을 남긴다"는 명인만의 흔들림 없는 신념이 머무는 한, 그 손끝이 빚어낸 단선의 바람은 앞으로도 오랜 세월 마르지 않는 전통으로 시원하게 불어올 것이다.



-방화선 선자장은 1956년 전주에서 태어나 고(故) 방춘근(1927~1998) 명장의 장녀로, 1965년부터 단선 부채를 만들며 아버지의 대를 이어 부채를 제작해왔다.전통기술에 더해 조형적 안목을 쌓았고, 현재 딸까지 이어져 3대째 가업이 계승되고 있다. 2010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제10호 선자장(단선)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전통부채 재현과 더불어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부채를 제작하고 있다.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 위치한 '방화선부채공예연구실'을 운영하며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고, 2020년부터는 한국공예장인학교에서 단선 부채 아카데미를 열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단선 부채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 일본, 스페인, 홍콩, 미국, 프랑스, 호주 등 해외 초청 전시에도 다수 참여했으며, 2025년에는 전통부채 제작 기술의 전승으로 현대적 가치 확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유산보호 유공자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홍희강.김나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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