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전주 평화동 유적에서 출토된 손잡이 달린 잔(把杯)이 첫 선을 보인다. 이는 국립전주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오늘날의 머그컵을 닮은 1,500년 전 형태의 잔으로 고대 민초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미륵사지 출토품에서는 중국 당나라 황제의 연호인 '대중 12년(858년)'이 새겨진 항아리 조각과 당나라 형요 백자가 함께 발굴돼 당시 국제 교류와 실용 도기 사용 양상을 입증한다.
통일신라 후기에 이르면 화려한 인화문은 점차 쇠퇴하고 실용성을 강조한 새로운 기종이 등장한다. 청해진 장보고를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과 선상 생활이 활성화됨에 따라 흔들리는 배 위에서 쉽게 구르는 원통형 병 대신 납작하게 누른 편병(납작병)과 주판알 모양의 편구병, 주름무늬 병이 새롭게 등장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제 시대의 '입넓은항아리(광구호, 廣口壺)'이다.
몸통에 비해 입구(아가리)가 넓고 밖으로 크게 벌어진 형태가 특징이다.목 부분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안으로 잘록하게 들어갔다가 둥글고 풍만하게 떨어지는 몸통(기신)으로 연결된다. 표면엔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자연스러운 균열과 접합 보존 처리 흔적이 보이며, 삼국시대 도기 특유의 단단하고 짙은 회갈색 또는 적갈색 빛을 띠고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은 29일부터 오는 10월 25일까지 본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특별전 '도기陶器, 우리를 담은 질그릇'을 갖는다.
이 자리는 청자와 백자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도기(질그릇)의 실용적 미학과 기술을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1,500년 흐름 속에서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전시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인 '양온을 새긴 짐승얼굴모양 귀 달린 납작병'과 완도 청해진 유적의 '주름무늬 병'을 비롯해 국립광주박물관이 도자문화관 개관을 계기로 엄선한 도기 295건, 306점을 대거 선보이는 자리다.
그동안 우리의 도자 문화사는 화려한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를 중심으로 서술돼 왔으나, 옛 선조들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자리한 도기는 상대적으로 소외돼왔다. 전시는 도기의 역사적 가치와 조형미를 시대별·지역별 맥락에서 다각도로 파헤쳐 우리 전통 공예의 또 다른 축을 입증할 예정이다. 우리 삶과 함께해 온 도기 문화의 본질적 가치를 재조명하며 제작 전통, 기종과 장식 기법의 변화, 소비 양상, 자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모두 4부에 걸쳐 이어진다.
제1부 '고대국가의 색깔을 담다'에서는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도기를 소개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각 나라의 대표적인 대형 항아리와 함께 오늘날의 머그컵이나 와인잔을 연상시키는 손잡이 잔들을 집중 연출했다.
삼국시대 도공들이 원삼국시대부터 이어진 가마 구조의 개선과 물레 제작 기술의 발전을 이뤄냈기에 이러한 대형 도기와 다채로운 기형 연출이 가능했다는 것이 문세영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특히 1,500년 전의 머그컵 형태 잔이나 와인잔 모양의 두 다리 컵, 십자 고리와 고사리 문양을 더한 잔 등은 당대 도공들의 정교한 기술력과 조형적 센스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2부 '장식과 실용을 겸하다'에서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인화문(印花文, 도장 무늬) 도기를 중심으로 당대의 생활문화를 살핀다. 676년 삼국 통일 이후 도기 기면에는 원, 말발굽, 물방울, 꽃, 물고기, 거북이 등 다양한 도장을 빼곡히 찍고 유약을 입힌 인화문 도기가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유행해 8세기 무렵 전국으로 확산했다. 과도한 굽이나 길쭉한 목 등 장식적 요소를 줄이고 정교한 도장 무늬로 화려함을 더한 인화문 도기는 뼈 항아리(골호) 등 왕실과 최고 상류층의 화장묘 문화와도 깊게 연관돼 나타난다.
제3부 '따로 또 같이, 도기×청자'에서는 영암 마산리·구림리, 여수 월하동 월성 등 서남부 지역 통일신라 도기 대표 가마터 6곳과 도기·청자의 관계를 조명한다. 해당 가마터들은 지방 생산 체계의 전개 과정과 함께 고려시대로 이어지는 민간 도기 생산 구조를 잘 보여준다. 특히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영암 구림리와 여수 월성 가마터에서는 도기를 구울 때 그릇끼리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조개껍데기를 받침재로 활용한 생생한 흔적도 확인된다. 또한 도기를 본뜬 초기 청자와 청자의 형태 및 문양을 본뜬 도기를 비교 연출, 고려시대 도기가 저장과 운반이라는 고유 기능을 담당하면서도 청자와 다채로운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보여준다.
제4부 '다채로운 일상을 읽다'에서는 고려와 조선시대 도기가 자기와 공존하며 전승된 모습을 살필 수 있다. 강진 삼흥리 가마터 출토품을 비롯해 태안 마도 해역에서 수중 발굴된 대형 물항아리(水甕)를 현장감 있게 연출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기록처럼 당시 선원들이 배 위에서 음용수를 보관하던 실제 용기들도 볼 수 있다. 또한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의 태항아리와 태지석을 통해 도기가 민간의 막그릇을 넘어 왕실 의례의 성물(聖物)로도 중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12세기경부터 제작된 회령 도기, 옹기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발전한 해주 항아리, 전라도·경기도·제주도 등 지역별 대형 저장 용기를 선보여 생활 속 다채로운 변화상을 조명한다. 전시의 마지막은 원삼국시대부터 삼국,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도기 표면에 끊임없이 사랑받아 온 물결무늬(파상문) 도기들과 감각적인 영상으로 꾸며졌다.
전시 기간에는 디지털 공방 체험 '도기? 도기!'와 '도기네컷' 등 참여형 공간이 마련되며, 매달 SNS 인증샷 및 퀴즈 이벤트도 참여가 가능하다. 전시 관람은 추석 당일(9월 25일)을 제외하고 무료로 진행된다.
최흥선 국립광주박물관장은 "도기는 선조들의 삶을 담아온 가장 오래된 생활 용기이자, 일상에서 널리 쓰이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지혜와 미감을 고스란히 담은 유산"이라며 "이번 특별전이 우리 도기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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