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경계를 넘어 추상으로

〈76〉 이성자, ‘푸른 거울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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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인간에게는 역경을 닫고 일어서는 유전자가 있다. 필사적인 의지의 근원을 설명하기에 부족해서 하는 말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시대는 늘 혼란하고.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상처받은 위대한 영혼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부디 다시 일어서라’다.

추상미술의 거장 이성자(1918-2009)는 역경의 한계를 극복한 화가의 표상이다. 그녀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격동의 시대에 결혼하여 아이들을 키우다가 운명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고향 진주를 떠나 파리로 향한다. 그 선택은 생존을 넘어 예술적 운명의 전환점이 된다. 파리 화단에서 동양인에, 여성이라는 이중의 주변성에 놓였지만, 그 경계적 위치에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만들어 간다. 파리는 이성자에게 과거의 기억을 객관화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고, 그녀의 회화는 바로 그 거리에서 이주와 단절, 상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언어였다.

이성자의 작업은 구상적 요소를 거쳐 추상으로 변화한다. 화면 속 색채와 면, 선의 구조를 한국적 자연관과 우주관에 개인적 기억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반복되는 수직과 수평의 구조, 대지와 하늘을 연상시키는 색채분할은, 자연의 질서를 작가의 기억에 압축하여 풍경이 되었다.

‘푸른 거울 422’는 이성자의 ‘여성과 대지’ 시기의 대표작으로 작가의 철학이 응축된 작품이다. 동양적 사유를 담은, 즉 추상이라는 형식 위에 모국의 정신성을 담아낸다. 파란색은 작가의 어머니가 즐겨 사용한 비취색 비녀를 모티프로 하였고, 생명과 우주, 인간 내면의 의식과 기억의 공간을 나무의 질감 같은 이미지로 표현한다. '거울'은 자기의 내면을 성찰하고 존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매개체다.

화면은 기하학적인 구조와 부드러운 색 면이 조화를 이루며 안정된 질서를 보여주는데, 이는 우주의 근원적 질서와 생명의 순환을 찾으려는 작가의 의지다. 절제된 색채와 균형 잡힌 구조, 청색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울림은 철학적 사유의 공간으로서 승화된 이상향이다.

‘아이들의 저녁나절’은 서정성과 장식성이 잘 드러난 그녀의 초기작품이다. "내가 캔버스에 붓질을 한 번 하는 것은 한국에 있는 아이들이 밥을 한술 뜨는 것과 같다"라고 했던 이성자의 세 아들에 대한 기억을 따듯한 색과 선의 리듬, 반복적인 붓질과 색채의 중첩으로 표현한다. 붉고 푸른 선들을 직조하듯 엮어 리듬을 만들고, 화면 아래 수직적 패턴은 대지와 들판을 연상시키듯 안정적인 표현이다. 이 작품은 훗날 그녀가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탐구하는 기하학적 추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조형적 원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2018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6억 원(394만 달러)에 낙찰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성자의 색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차갑지 않다. 견뎌 온 삶의 흔적과 침묵에서 길러진 강인함이 있다. 이는 여성과 대지, 그리고 우주라는 주제로 그녀를 일으켜 세운 작품의 원동력이었다. 이성자의 회화는 그 시대 한국미술이 세계와 만나는 한 방식이 되었으며, 동시에 여성 예술가가 자신의 중심을 세워간 기록이다. 그녀를 ‘여류 화가’라 불렀지만, 그의 작업은 성별로 규정되기를 거부한다. 남성 중심의 화단에서 스스로 자리를 개척한 이성자의 투쟁은 외치지 않고 주장하지도 않은 듯하지만. 잔잔하게 가슴에 파고드는 모성(母性)이 있다.

/화가, 칼럼니스트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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