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차향으로 물든 금산사

[모악산 달빛 차회에 가보니] ‘모악산 달빛 차회’ 첫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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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낮 동안의 열기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한여름 밤, 나는 복잡한 세상의 소음을 뒤로하고 모악산 자락에 자리한 천년 고찰 김제 금산사를 찾았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는 길, 한낮의 태양이 달구어 놓았던 대지는 어느새 서늘한 산바람에 부드럽게 식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산사의 시간은 고요의 깊이를 더해갔다.

금산사는 한국에서 가장 넓은 마당을 자랑하고 있다. 그 마당을 차회 장소로 삼았다. 한여름 밤 차향이 산사를 채웠다. 금산사가 야간 개방과 차문화를 결합한 ‘모악산 달빛 차회’를 처음 선보이며 수행공간을 넘어 시민과 함께하는 열린 문화공간으로서 사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제17교구본사 금산사는 지난달 28일 저녁 경내 큰마당에서 ‘모악산 달빛 차회’를 개최했다.

장마철이어서 보름달은 구름 뒤에 숨었지만, 은은한 조명이 전각과 숲을 비추며 산사는 낮과는 또 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참가자들은 늦은 시간까지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며 여름밤의 정취를 즐겼다.

이번 '모악산 달빛 차회'는 단순한 차 모임을 넘어 사찰의 공간과 문화재를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산사가 일상 속 쉼과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준 첫걸음으로 의미를 더했다.

행사는 주지 화평스님의 안내를 시작으로 세심다회 회원들의 불전 차공양과 저녁예불, 자유 차담 순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5~20명씩 삼삼오오 모여 각자 준비해 온 차와 다과를 나누며 담소를 이어갔다.

차를 좋아하는 일반 시민들과 소식을 듣고 찾아온 스님들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넓은 금산사 마당은 늦은 밤까지 웃음과 차향으로 가득했다.

옛 시골마을에서 모깃불을 피워놓고 이웃들과 둘러앉아 더위를 식히며 이야기를 나누던 여름밤 풍경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사찰의 넉넉한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린 쉼터가 되었고, 참가자들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산사가 주는 여유를 만끽했다.

마당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우려낸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은은한 차향이 한여름 밤의 서늘한 공기 속으로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그 향은 단순히 차나무 잎이 가진 냄새가 아니었다.

맑은 계곡 소리, 깊은 숲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풀 내음, 그리고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켜온 도량의 침묵이 함께 버무려진 자연의 향기였다.고개를 들어 바라본 미륵전은 거대한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달빛을 받아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낮의 금산사가 화려하고 웅장한 백제의 숨결을 보여준다면, 밤의 금산사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했다. 사방을 둘러싼 모악산의 짙은 초록빛 실루엣이 마치 거대한 병풍처럼 아늑하게 경내를 감싸 안았다.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 한 모금 머금는다. 쌉싸름하면서도 끝맛이 달콤한 차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마음속에 엉겨 붙어 있던 번뇌와 한여름의 갈증이 맑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흐르는 시간도 잠시 걸음을 멈춘 듯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맑은 소리를 내며 고요를 깨웠지만, 그 소리는 오히려 적막을 더 깊고 아늑하게 만들 뿐이었다.

화평스님은 이번 차회를 마련한 배경에 대해 “밤이 되면 사찰은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서 “고궁과 문화재는 야간 개방을 통해 시민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전하고 있는데, 사찰은 아직 그런 문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되면 멈춰 있는 문화재를 다시 살아 숨 쉬게 해 신도와 시민들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화평스님을 비롯, 우림스님, 효진스님, 여찬스님, 우경스님 등 사중 스님들과 말사 주지 스님, 천고사 등 말사 신도, 세심다회 회원, 한광수 금산사 신도회장을 비롯한 신도와 차 동호인 등 200여 명이 함께했다.

한광수 금산사 신도회장도 “주지스님이 격의 없이 사람들을 맞이하며 차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금산사의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며 “야경 속 전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새삼 알게 됐고,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뜻깊었다”고 했다.

화평스님은 “가능하다면 이런 자리를 매주 열고 싶은 마음이다. 이번이 첫 시도인 만큼 참가자들과 사중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프로그램을 보완해 금산사의 문화와 차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차향으로 물든 금산사의 한여름 밤은 나에게 속도를 줄이고 멈추어 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채우려고만 버둥거렸던 일상에서 벗어나, 비워진 마음에 은은한 차향과 달빛을 채우는 이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차향은 더욱 짙어지고, 내 마음의 평온도 함께 깊어만 갔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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