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욱선생의 예술혼을 다시 만나다

국립전주박물관, ‘기증기념실 석전’ 새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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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국립전주박물관이 기증기념실 석전’ 의 새단장을 마쳤다.

‘기증기념실 석전’은 손바닥 붓을 쥐고 글씨를 쓰는 ‘악필법’으로 널리 알려진 서예가 석전 황욱(1898~1993)을 기리는 공간이다. 1999년 석전의 막내아들 황병근이 5,000여점의 수집품을 국립전주박물관에 기증하면서 2002년 11월 처음 문을 열었다.

지난 6월엔 관람객 여러분들이 좀 더 편안하게 전시를 보실 수 있도록 오래된 전시실 내부를 새롭게 꾸며 문을 열게 됐다.

전시실에선 석전의 서예작품을 비롯한 문방사우와 수집품, 석전의 삶과 작품을 보다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새롭게 꾸민 국립전주박물관의 ‘기증기념실 석전’ 에서 역경을 극복한 강인한 의지와 불굴의 예술정신으로 이루어진 석전의 삶과 그 속에서 탄생한 개성적인 글씨를 만나볼 수 있다,

젊은 시절의 황욱은 중앙 서단에 나서지 않고 홀로 서예의 길을 걸었다. 이때의 작품에서는 익히 알려진 황욱의 글씨와는 다른 반듯하고 단아한 서풍을 만날 수 있다.

선생은 1920년 23세 때 차숙부 노병관과 장인 금강산 돈도암에 머무르며 십년동안 동진의 왕희지, 원나라 조맹부의 글씨를 배웠다고 전하며, 1930년 33세 때 고향에 돌아와서는 조선후기 서화가로 널리 알려진 자하 신위(1769-1845)를 사숙했다. 그리고 57세 때는 한국전쟁에 따른 집안의 어려움으로 전주와 고창에 은거하며 시예와 시, 그리고 거문고로 한적함을 달랬다.

68세 무렵(1965년)부터 손이 떨리는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 손바닥으로 붓을 쥐는 악필법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붓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악필법을 구사하던 때의 글씨이지만, 작품에 따라 부드럽고 아름다운 붓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선생은 자신의 악필법과 글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악필로 하면 힘이 들어가 붓이 흔들리지 않는 대신 고도의 수련이 필요합니다. 글씨는 송곳을 잡아 모재 위를 긋듯 하고 머무를 때는 진흙 위에 도장을 찍는 것 같이 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곱게 쓰려고 하는데, 그보다는 필법을 섭렵하고 정신으로 써야 합니다”

76세 때인 1973년 전주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하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린 동아일보 초대전과 부산에서 열린 부산일보 초대전 등을 통해 글씨로 큰 명성을 얻게 됐다.

87세 무렵(1984년)부터 손이 떨리는 증상이 더욱 심해져 오른손 악필조차 어렵게 되자 왼손 악필법을 시도하게 된다. 왼손으로 글씨를 썼기 때문에 글자의 오른쪽 어깨가 아래로 기울어지고 획도 왼쪽으로 쏠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붓을 움직이기가 더 어려워졌지만, 선생은 만년의 왼손 악필법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래서 황욱의 개성이 한껏 드러난 힘차고 굳센 글씨를 볼 수 있다. 역경을 극복하며 완성한 황욱의 독특한 서풍에서 서예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황욱은 자신의 왼손 악필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글씨를 너무 써서 손에 무리가 온 것이지요. 그래서 악필을 쓴 건데 오른손으로도 안 되어 왼손으로 옮겼지요. 부분적인 기교나 잔글씨 쓰는 데는 불편하지만 글씨에 힘이 넘치고 활달하고 웅건해요”

그는 늦은 나이임에도 88세 때의 미술기념 초대전을 비롯해서 전북일보 초대전, 중앙일보 망백전 등을 개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후 1993년, 황욱은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1999년 문화예술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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