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어진', 원본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새단장한 상설전시관 1층 대한제국실서 소개. 초상화가로 이름 높았던 채용신이 그렸다고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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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고종황제어진', 원본 7년 만에 공개





황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고종을 표현한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은 약 7년 만에 전시장에 나와 관람객과 만난다.

초상화가로 이름 높았던 채용신(1850∼1941)이 그렸다고 전하는 그림이다.

익선관(翼善冠)에 황색 곤룡포(衮龍袍)를 입고 용상(龍床)에 정면을 향하고 앉아 있는 인물은 조선 26대 왕 고종(高宗, 1852~1919)이다.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으로 변경된 후 황제가 되었기에 황색 곤룡포를 착용한 모습이다.

화면에 작품의 제작 경위나 작가를 알려주는 글이 없지만 사진으로 전하는 고종의 얼굴과 동일하고 또한 호패에 ‘임자생(壬子生) 갑자등극(甲子登極)’이라고 적혀 있어 고종 황제임을 알 수 있다.

인물의 얼굴은 콧등이나 이마 등 도드라진 곳을 밝게 보이도록 표현하였으며, 극세필의 붓질을 반복하여 피부의 결과 입체감을 표현했다. 이전 시기 초상화에 비해 다소 왜소해진 몸의 표현과 사실적인 비율의 체구, 과장되지 않은 옷의 주름, 관복 윤곽의 표현은 20세기 이후 초상화의 특징이다.

족좌대는 정면에서 본 시점으로 그 아래 깔린 화문석은 위에서 본 시점으로 그려서 여러 시점이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는데, 이는 채용신 초상화의 독특한 표현 방식이다.

채용신은 고종 어진의 초본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어진을 여러 번 모사했다. 이것은 어진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실인데, 정해진 전각에 일정한 예를 갖추어 도사(圖寫)되고 봉안됐던 어진이 이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국왕을 경모하는 마음에서 두고 볼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 외에도 현재 고종 어진은 두 점이 더 알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관 1층 대한제국실의 구성과 전시 유물을 개편, 지난달 30일부터 고종황제어진을 포함, '국새 칙명지보(勅命之寶)'와 '데니 태극기', '안중근 의사 유묵 - 용공난용연포기재' 등 보물 7점을 포함, 65점의 자료로 대한제국의 면면을 비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 1층 대한제국실을 새로 단장해 30일 다시 연 건 대한제국과 한국의 연결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때까지 박물관 상설전시관의 한국사는 사실상 조선왕조까지였다. 1897년부터 1910년까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기 직전 대한제국 13년의 역사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지리도 못난 선조들이 일제에 나라를 넘겨준 기간으로 치부돼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시 공간은 133㎡(약 40평) 규모로 크지 않다. 보물 7점 등 문화유산 65점 중 채용신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고종황제어진'을 주목할 만하다. 원본이 대중에 공개되는 건 7년 만이다. 황제의 어새(御璽) 3점과 즉위식 과정을 기록한 '대례의궤'도 걸렸다. 1890년께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태극기 '데니 태극기'도 나왔다.

나라가 망해가던 시기인 만큼 시각적으로 화려한 유물은 없다. 박물관은 이런 한계를 영상으로 메웠다. 투명 OLED와 인공지능(AI), 커브형 스크린을 동원한 영상 5편이 벽과 모서리마다 상영된다. 입구에서는 전등이 켜지는 연출과 함께 황실 문양인 오얏꽃이 유리 위로 떠오른다. 조선을 지나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는 신호다. 안쪽에서는 양복을 입은 고종의 모습과 근대 도시로 변해가는 한성의 풍경이 벽면을 채운다.

전시의 문을 닫는 건 조선총독부 청사 건설 당시 일제가 묻었던 동판과 은판이다.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헐 때 나왔다. 대한제국을 미화하는 '정신승리'도, 망할 만한 나라였다는 자학도 아닌 그 사이에서 전시의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중앙박물관측은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역사 그 자체로 바라보자는 의미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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