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얼마 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말을 들었다.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거야." 처음에는 다소 과장된 표현처럼 들렸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그 말이 단순한 푸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60대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낀 '샌드위치 세대'이다. 부모님을 부양하면서도 자녀의 교육비와 결혼 비용을 책임졌고, 자신의 노후는 뒤로 미뤄왔다. 자신의 부모 세대가 자식을 위해 희생했던 것처럼 그들도 같은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 세대가 늙어갈 즈음에는 자식들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때는 한 지붕 아래에서 3 세대가 함께 사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자식과 손주까지 함께 생활하며 돌봄은 가족의 일상이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갈등은 있었지만 부모님을 모시는 일 자체는 특별한 선택이 아닌 자식들의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가족의 역할이었고 삶의 질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달라졌다.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1인 가구와 비혼 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가족의 규모는 작아졌고, 직장은 부모 곁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야만 했고 해외에도 있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을 모시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맞벌이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돌봄을 가족에게만 맡기기에는 부담이 너무 커졌다. 그래서 국가는 방문요양, 재가복지, 주야간보호센터, 장기요양보험, 각종 돌봄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가족의 책임을 국가가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가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현실을 인정한 결과이다. 부모 부양은 이제 한 집안의 사적인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사회의 돌봄제도가 모든 것을, 노년층의 빈 허허로운 마음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부모님을 요양시설에 모셨다는 이유만으로 효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집에서 함께 산다고 해서 모두 행복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사느냐보다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이다. 그럼에도 많은 노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버려졌다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외로움은 어떤 복지제도로도 온전히 메워주기 어렵다.
자녀들의 입장도 이해하여야 한다. 집값은 오르고 일자리는 불안정하며, 자신의 자녀를 키우는 것조차 벅찬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부모님 봉양까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는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되기도 한다. 효를 막무가내로 이야기하기 전에 사회 구조가 먼저 변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최근 노년층에서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주지 말고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라"는 조언이 널리 공감을 얻는다. 집을 주택연금으로 활용하거나 노후자금을 남겨두고, 건강할 때 스스로 삶을 설계하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부모의 마지막 의무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이 자녀에게도 부담을 덜어주는 선택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 변화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 줄어들어서 생긴 현상은 아니다. 가족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으려 하고, 자녀는 부모를 외면하려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책임을 다하려 한다. 문제는 그 사이에서 서로가 미안함과 죄책감, 서운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데 있다.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왜 자식이 부모님을 모시지 않느냐"가 아니다. 가족 누구도 죄인이 되지 않으면서도 인간다운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돌봄을 가족에게만 맡길 것인지, 국가와 지역사회가 어떻게 함께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어쩌면 60대는 집에서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이어야 하는 것은 '부모를 모시는 문화'가 아니라 '돌봄을 가족에게만 떠넘기는 시대'이어야 한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랑을 실천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한 사회의 품격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가보다 노인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돌봄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자녀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나 존엄을 잃지 않고 늙어갈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 송광섭(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법학박사, 수필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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