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과학이란 무엇인가(지은이 우궈성, 옮긴이 김규원, 펴낸 곳 파라아카데미)'는 단순한 과학사 책이 아니다. 이성과 의지, 동양과 서양, 인문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대 문명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향방을 묻는 웅장한 지적 서사시이다.
AI 시대에 우리가 꼭 던져야 하는 질문, “과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 서면 우리는 인류가 이룩한 문명과 기술을 떠올리고, 우리 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기기들을 그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해다. 용도와 쓸모만 생각해서는 과학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없으며, 우리가 누리는 결실의 위험에도 다가갈 수 없다. AI 시대의 한복판으로 들어서며 우리는 과학의 본질을 묻는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유용한 기술’이나 국가의 부국강병을 위한 ‘실용적 도구’로 여긴다. 우궈성(吴国盛) 칭화대 교수의 역작 『과학이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이러한 공리주의적 오해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과학의 진정한 기원과 철학적 본질을 파헤치는 지적 탐구의 여정이다.
저자는 우리가 과학을 오해하는 근본 원인이 과학의 ‘독특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 있다고 지적한다. 19세기 구국(救國)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동양에 수입된 ‘과학’은 이방인의 뛰어난 군사・경제적 기술로 도입되었고, 나아가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 옳음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과학을 단순히 인류 보편의 지능이나 기술의 산물로 보는 시각을 단호히 거부하며, 과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탄생지인 서양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서양 과학의 뼈대이자 대전통(大傳統)인 고대 그리스 과학은 어떠한 현실적인 이익이나 실용성도 추구하지 않았다. 혈연과 정(情)을 중시한 동양의 농경문화와 달리, 이동이 잦았던 그리스인들은 낯선 이들과의 계약 속에서 ‘자유’를 인간 본성의 최고 이상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실용적 쓰임새를 위함이 아니라, 영원불변한 진리와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여 참된 ‘자유’를 얻는 과정이었다. 어떠한 목적에도 종속되지 않고 순수한 지식 그 자체를 추구하는 ‘자유의 학문’, 이것이 바로 연역적 추론을 바탕으로 한 고대 그리스 이성과학의 진수였다.
그렇다면 진리를 추구하던 고대의 과학은 어떻게 오늘날 자연을 정복하는 ‘현대과학’으로 변모했을까? 저자는 그 극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배경으로 ‘기독교’를 지목한다. 중세의 대학이라는 자유로운 학문 제도의 보호 속에서 발달한 스콜라 철학, 특히 그 내부에서 폭발한 ‘유명론(Nominalism)’ 혁명은 신의 전능함과 절대적 자유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자연의 고정된 질서를 파편화시켰다. 근대의 인간은 이러한 신의 창조적 의지를 본받아 스스로 무한한 주체가 되려 했고, 데카르트와 베이컨을 거치며 자연을 수학적으로 해독하고 통제하려는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가 현대과학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현대과학은 자연을 실험실이라는 인위적 공간으로 끌어들여 심문하고 개조하는 수리실험과학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서구적 맥락에서 자라난 과학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저자는 과학사계의 오랜 숙제인 “왜 중국(동양)에서 근대 과학이 탄생하지 않았는가”라는 조지프 니덤의 난제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는 서구 중심주의적 프레임에 갇힌 가짜 문제이며, 동양 문명은 서양과 다른 나무임을 강조한다. 동양의 복숭아나무에는 애초에 수리실험과학이라는 ‘사과’를 맺을 유전자(그리스 이성)가 없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대신 동양에는 자연과 친밀하게 교감하고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기록하는 또 다른 과학의 대안적 전통, 즉 ‘박물학(Natural History), 즉 자연지(自然志)가 고도로 발달해 있었다. 천문, 지리, 농학, 의학을 아우르는 동양의 전통 지식은 우주를 정복할 기계로 보지 않고, 생명을 품는 인애(仁愛)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질서 속에서 자연을 존중한 위대한 박물학적 성취였다.
오늘날 수리실험과학의 무한한 질주는 인류에게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인 생태 위기와 자연의 수탈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이 책은 기술 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엄중한 경종을 울린다. 진정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과학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진리를 탐구하는 고대 그리스의 순수한 자유정신을 회복해야 하며, 동시에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생명을 품는 인애의 지혜가 담긴 박물학적 전통을 부활시켜 두 과학 전통을 조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류 지성의 뿌리를 탐구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는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에게 깊은 통찰을 선사하는 필독서로 강력히 추천한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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