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동초거사 김석곤 입극 초상(東樵居士金晳坤笠屐肖像)
1918년
석지 채용신(1850~1941)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이 초상은 조선 말기부터 근대기에 활동한 화가이자 어진 화사로 알려진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그렸다. 화면에는 ‘무오중하戊午仲夏 석지채용신사石芝蔡龍臣寫’라는 글이 남아 있어 1918년 5월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물은 흰 도포를 입고 삿갓을 쓴 채 바위 위에 반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으며, 곁에는 벗어 놓은 나막신 한 짝과 커다란 붓이 놓여 있다. 화면에는 김석곤이 직접 지은 「동초자경東樵自警」이 적혀 있는데, 이는 주희朱熹의 「서화상자경書畵像自警」을 본받아 학문과 수양의 뜻을 다짐한 글이다.
초상의 제목인 ‘입극笠屐’은 중국 문인 소동파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비를 만나 농가에서 삿갓과 나막신을 빌려 비를 피했다’라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모습을 그린 그림을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라 하며, 김석곤 역시 이를 본받아 자신의 초상을 ‘입극초상笠屐肖像’이라 했다. 초상 속 삿갓과 나막신은 자연 속을 유람하며 글씨를 남기는 문인의 삶을 상징하고, 커다란 붓은 서예와 암각에 평생을 바친 그의 예술 세계를 상징한다.
얼굴 표현에서는 채용신 특유의 사실성이 돋보인다. 눈빛과 수염, 피부의 음영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인물의 기질과 연륜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이는 외형뿐 아니라 인물의 정신까지 그려내고자 했던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전통을 잘 보여준다. 화면을 채운 암벽과 계류, 수목 역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고자 했던 김석곤이 지향한 삶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현재 전해지는 그의 가장 이른 암각서인 ‘세연암洗硯巖(1918. 春夏)'을 새긴 무렵에 제작되었다. 이후‘내장풍악內藏楓嶽(1918. 6. 9)'을 시작으로 본격화하는 암각서 활동의 출발점과 맞물린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東樵居士金晳坤笠屐肖像
동초거사 김석곤의 삿갓과 나막신 초상
予本布衣,
逍遙乎仁山智水之間.
是亦盖有意焉,
而力莫能與也,
奉先聖之遺訓,
惟讀書而自修,
或庶㡬乎斯語.
東樵自警時年四十二
戊午 仲夏 石芝蔡龍臣寫
나는 본래 벼슬 없이 지내는 선비로
산과 물 사이에서 노니는 것,
이 또한 뜻을 가졌지만
능력이 미치지 못했네.
옛날 성인의 유훈을 받들고
오직 독서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것,
어쩌면 이 말은 거의 할 수 있을 듯하네.
동초(東樵)가 스스로 경계했을 때 42세였다.
무오년(1918년) 5월 석지 채용신이 그리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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