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창업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던 사람이었다.
사업계획서를 써본 적도 없었고, 창업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어린이집이라는 교육 현장에서만 살아왔던 내가 폐교를 만나며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왜 그런 곳에서 시작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창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품고 있는 가능성을 선택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자금도, 기술도 아니었다.
배울 곳이 없었다.
유휴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오래된 공간에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담아야 하는지,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례를 찾아도 대부분 도시의 이야기였고, 내가 서 있는 시골의 현실과는 달랐다. 결국 하나하나 부딪히며 답을 찾아야 했다. 수없이 실패했고, 다시 시작했고, 또 다른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가장 힘들었지만,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값진 배움이었다.
얼마 전 익산에서 유휴공간 활용 사례를 주제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폐교를 활용한 공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처음에는 익산 인근에서 창업에 관심 있는 분들이 오시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강연을 마친 뒤 이어진 질의응답과 유휴공간을 함께 둘러보며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강원도에서 오신 분도 있었고, 서울과 경기도, 세종에서 오신 분도 있었다. 어떤 분은 전날 내려와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머물며 강연을 기다렸다고 했다.
순간 놀라움보다 궁금함이 먼저 들었다.
무엇이 이 먼 길을 오게 했을까.
질문을 듣다 보니 답은 분명했다. 그분들이 궁금했던 것은 폐교를 얼마에 매입했는지, 인테리어 비용이 얼마였는지가 아니었다. 어떻게 오래된 공간이 다시 사람을 모으는 공간이 되었는지, 왜 사람들은 굳이 이곳까지 찾아오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지역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배움의 기회가, 이제는 누군가에게는 내가 걸어온 경험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왜 폐교였나요?"라고 물었다.
사실 나는 폐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스토리를 선택했다.
아이들의 웃음이 머물던 교실, 운동장, 복도.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켜켜이 쌓인 이야기였다. 관광지 하나 없던 작은 시골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이유도 결국 그 이야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건물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과 이야기를 만나러 온다.
우리는 흔히 '유휴공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그 표현을 들을 때마다 조금 아쉽다. 그 공간은 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래된 학교도, 빈집도, 창고도 마찬가지다. 공간은 스스로 살아나지 않는다. 그 안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으려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다시 숨을 쉰다.
이번 강연을 통해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다. 지역에는 유휴공간을 고민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멀리서 시간을 들여 찾아오고, 질문하고, 현장을 직접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열정은 단순히 공간을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에서 몇 년 전 아무것도 모르던 내 모습을 다시 보았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래 생각했다. 나는 배울 곳이 없어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고, 같은 고민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가 그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오고 있었다.
그날 나는 유휴공간에 대한 가능성만 본 것이 아니었다.
배움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지역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보았다.
지역의 경쟁력은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데 있지 않다.
오래된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배우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때 비로소 지역은 다시 살아난다.
나는 폐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이제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되고 있었다.
/웨스턴빈(라하트) 대표 이선율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