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군산은 1899년 개항하면서 전북에서 가장 빨리 근대화된 도시였다. 5월 1일 부산, 원산 등에 이어 전국에서 6번째로 개항했다. 호남평야의 막대한 곡물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일제의 수탈 전초기지로 활용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또, 군산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도 전북인으로 처음 입선자를 배출한 지역이었다. 이것은 그동안 전북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이순재가 제7회 입선한 것보다 2년 앞선다.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춘광>은 군산 손용주, 입선작 <풍경>은 군산 김용해로, 전북인 최초의 입선작이다. 손용주와 김용해는 조선에 새로운 근대식 교육이 시행되면서 일본에서 건너와, 당시 미술교사로 활동했던 일본인 화가들에의해 서양화를 습득한 차이를 가진다. 필자는 염재 송태회 선생 문집을 통해 일본 교사에게 서양화를 배우러 다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가 그를 기르쳤을까.
1919년 전주고보(현 전고)가 설립되면서 1925년에 삼린평(森麟平, 모리린페이)이 부임했다. 그는 일본 문부성 미술공모전에서 입상 경력이 있는 화가로서 그 외 잘 알려진 것은 없지만, 총독부에서 전주지역의 정책적 교육 장악을 위해 신경 써서 배치한 인물이라고 한다. 오쓰 이쯔지(大津逸次, 1891-1961)는 전주부 전주공립고등여학교 미술 교사로 근무했다. 오쓰는 일제강점기 일본 문부성 작가로 선정, 파리를 다녀온 인물이다. "오쓰화백의 양화전"은 경성일보.1928년 12월 6일자에 소개됐다. ‘종종 일관되게 특별한 우대생으로 대우받았다. 오카다 사부로스케(岡田三郞助)와 와다 산조(和田三造) 화백의 특별한 화풍을 계승하고 있다. 오쓰는 1924년 공모전에서 선정, 프랑스에 체류했다’
지난 1923년 개교한 전주사범학교엔1937년부터 복택광(卜澤廣, 우리지아 히로시)과 이동정명(伊東正明, 이토 마사아키)이 미술교사로 활약했고, 이들은 금릉 김영창, 한소희, 유경채, 고화흠 등을 배출시켰다. 이렇듯 부정할 수 없이 전북 근대사에 있어 일본인 미술 교사들을 통해 새로운 미술학도들이 배출됐고 서양화의 뿌리가 형성되면서 정착했다. 전통적 화숙 체계에서 근대식 미술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던 화가 지망생들에게 그들은 서구적인 미술 교육의 첫걸음이었다고 할 만큼 중요한 발자취였다.
전북 서양화의 1세대 권우택(權雨澤, 1911.3.11.~?)은 전라북도 전주군 이동면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고창고보를 졸업하고 1929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 특별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동경미술학교의 후지시마 타케지 교실에서 수학하며 재학 중 조선미술전람회에서 2회 연속으로 입선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미술 명문 학교였던 동경미술학교에서는 ‘졸업 제작 자화상’을 그리는 전통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은 <정자관을 쓴 자화상>을 남겼고, 김관호, 김찬영, 이종우, 김용준, 오지호, 이병규, 이마동, 김인승, 심형구 등 이 학교를 졸업한 46명의 조선인 화가들은 자신의 자화상을 제작해 현재 학교의 예술자료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고창고보 교사, 박노홍(朴魯弘, 1905.9.17.~?)과 권우택은 동경미술학교에서 미술 유학하고 졸업 제작 자화상을 남긴 전북 출신의 서양화 선구자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졸업하고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미술계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권우택은 전북출신으로 최초로 유학을 갖다온 인물이 될 공산이 커졌다.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1922~1944)는 일제 강점기 시기 조선 총독부 주최로 1922년 1944년까지 모두 23회가 개최된 미술공모전이다. 안타깝게도 조선미전의 도록은 1922년부터 1940년(19회)까지만 제작됐다. 1941년(20회)부터 전쟁으로 인해 물자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도록은 총독부 관보의 편람 형식으로 이미지 없이 입선작가와 작품 목록만 축소 발간됐다. 이에 승동표의 <정물>은 그의 일본미술학교 재학시절 작품 특성과 입선을 확인하는 귀중한 자료로, 마지막 도록을 제작한 19회 전시회에 실렸다.
당시 동광미술연구소는 전북에서 태어나 일본 미술 유학을 다녀온 서양화의 선구자 이순재, 박병수, 김영창이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었다. 연구소는 3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 운영되다가 폐쇄됐지만 이의주 외에도 천칠봉, 배형식, 이준성, 허은, 하반영, 소병호, 전영래 등 해방 이후 전북 화가들이 여기에서 배출됐을 만큼 의미 있는 미술교습소였다. 전북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서양화 전공) 김미선 씨는 박사학위 논문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본 전북 서양화단의 형성 과정 연구'는 일제강점기 전북 서양화단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입체적으로 고찰한 자료이다. 이 논문 등을 토대로 일제시대의 전북미술사를 다시 써야 한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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