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기업은 성장할 수 있다. 혁신으로 시장을 바꾸고, 기술로 소비자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며,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임까지 함께 성장하지 못한 기업은 오래갈 수 없다.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매출이나 순이익이 아니라 사회가 부여한 신뢰를 얼마나 지켜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거대 기업일수록 더 큰 책임을 요구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쿠팡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보자.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물류센터 화재, 노동환경 논란까지 이어지며 국민의 불안과 우려는 커졌다. 그러나 정작 국민이 가장 듣고 싶었던 질문에는 명쾌한 답을 듣지 못했다.
"최고 책임자는 어디에 있는가."
사고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고 이후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고객은 완벽함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기대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원인을 투명하게 밝히며,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국민 앞에 서는 것. 그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러나 쿠팡이 보여준 모습은 달랐다.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자리에는 전문경영인이 앞에 섰고,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는 복잡한 지배구조와 법인 체계가 먼저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상장기업의 지위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미국 법정에서는 한국 법인의 문제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고객이 기업에 맡긴 것은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만이 아니다. 자신의 일상과 삶의 흔적, 그리고 기업을 향한 신뢰였다. 고객은 기업을 신뢰했기에 상품구매를 위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맡긴 것이다. 정부 조사 결과 기본적인 보안 관리와 접근 통제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고, 사고 이후의 대응에서도 여러 논란이 이어졌다.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사고의 규모보다 신뢰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이다. 의사결정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으면서,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순간, 책임의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권한은 독점하고 책임은 분산하는 조직은 위기를 넘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신뢰까지 회복할 수는 없다.
쿠팡은 대한민국 소비자의 선택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이다. 그렇기에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해명이나 복잡한 법률 논리가 아니다. 거대한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과 진정성이다.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면 그 신뢰를 지키는 일 역시 가장 앞장서야 한다.
기업은 실수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책임을 외면하는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기업은 매출로 성장하지만 신뢰로 존속한다. 쿠팡이 지금 잃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 소비자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다. 그리고 신뢰를 잃은 기업에게 미래는 결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오승옥(문화활동가·관광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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