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운곡습지, 오베이골의 숨결을 걷다

공유

[새전북신문] 유월의 끝자락, 바람과 뭉게구름만 고즈넉이 노니는 고창 운곡습지를 찾았다. 습지센터 주변의 운곡서원과 300톤 무게의 고인돌을 둘러보았다. 개울 건너 회화나무는 성내면에 있는 이재 황윤석 생가의 선비 나무를 떠올리게 하였다. 이들은 고창이 예부터 인재가 나고 세력이 번성했던 ‘선비와 역사의 고장‘임을 일깨워주는 느낌이었다. 고인돌 세력은 훗날 마한의 ‘모로비리국’으로 발전했고, 서원은 주자학의 맥을 이으며 인재 배출의 요람이 되었다.

‘오베이골’은 고창 운곡습지의 중심 골짜기다. 현재는 수몰되어서 옛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독특한 어감만큼이나 깊은 역사·지리적 배경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어원은 ‘오방골(五方谷)‘인데 전라도 지역의 독특한 음운 변화, 바로 구개음화와 움라우트 현상을 거쳐 굳어진 말이다. 오방은 동·서·남·북의 사방과 그 가운데인 중앙을 합친 다섯 방위를 뜻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골짜기의 ’골‘과 오방이 합쳐진 ’오방골‘은 구전되면서 전라도 사투리 ‘오베이골‘로 변했다. ‘운곡람사르습지’ 리플릿 지도를 보니 다섯 갈래의 고갯길이 보인다. 수몰된 옛날 운곡리는 이름하여 ’오방동(五方洞)이었다. 오베이골 주민은 굴치재를 이용해 현재 선운CC에서 복분자 클러스터 지역으로, 백운재는 백운마을로, 호암재는 호암마을로, 행정재는 송암마을로, 직업재는 고창고인돌박물관이 있는 매산마을로, 바로 오방으로 소통했다. 직업재(織業峙)는 매산재이고, 지도상의 호암재는 본래 문헌에 기록된 '사실재'의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운곡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산물인 도자기, 명주베나 한지를 이 고개를 넘어 고창 읍내에 내다 팔았을 것이다. 아픈 역사가 깃든 호암재는 1940년대의 동해원을 1990년대에 호암마을로 개명하면서 호암재로 부르고 있다.

산책하면서 람사르습지를 생각했다. 오베이골에는 원래 산지습지였다. 인간이 정착하면서 다랑논으로 경작했던 땅이다. 1981년에 한빛원자력발전소의 냉각 용수로 쓰기 위한 저수지가 운곡마을에 들어서면서 운곡마을에 살던 원주민들은 망향비만 남긴 채 정든 고향 땅을 떠났다. 가을걷이하고 이사하면서 다랑논을 그대로 놓고 갔다. 원주민들이 물꼬를 터놓지 않고 떠난 덕에 오베이골 다랑논은 중산간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와 비가 오면 더해지는 빗물로 언제나 물이 차고 넘쳤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습지식물인 버드나무 같은 식물은 무논으로 달려와서 무성하게 자랐고, 산지 식물인 소나무나 참나무는 다랑논에는 얼씬도 못한 탓에 오늘의 버들습지가 된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데 습지 상부에 저습지를 조성해 놓았다. 습지에 더 깊은 웅덩이를 만드는 일일 테니 칭찬을 해야 마땅하겠으나 생태학자의 눈에 거슬리는 게 하나 있었다. 둠벙 옆으로 수로가 크게 나 있는 게 아닌가. 습지 상부에 물골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운곡습지는 산지습지이므로 지하수위가 낮아지는 날에는 습지는 점점 육화(陸化)되어 산지로 바뀔 수 있다. 관계 당국에 제안한다. 원주민이 무논의 물꼬를 그대로 둔 채로 떠났기에,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오늘의 람사르습지가 될 수 있었다. 새로 조성한 웅덩이는 그대로 둘지라도, 물골로 만든 수로는 주변 습지의 흙으로 메워 편평한 산지습지로의 원형을 복원해야 한다. 토양수분이 안정되어 있어야만 지하수위가 올라가 더 아름다운 람사르습지의 위용을 자자손손 전하게 될 것이다.

운곡습지는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태고의 땅이자, 국내 16번째로 가치를 인정받은 람사르습지다. 단순히 관광 편의나 조경을 이유로 이 경이로운 원형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줄 소중한 자연유산이기에, 지금 우리가 기질 자연관은 인간의 과도한 간섭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맡기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고창 임동옥 교수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