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지은이 이원, 펴낸 곳 문학과지성사)'은 여섯번째 시집 『나는 나의 다정한 얼룩말』(현대문학, 2018)을 출간한 이래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점점 더 삶의 가장자리로, 희미한 곳으로, 연약한 곳으로 나아가 다른 이의 곁에 서서 직접 그들이 되어 살아보려 한 흔적이 담긴 시 61편을 총 4부로 나눠 묶었다. “억압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가 씌어질 수 있을까”(뒤표지 ‘시인의 산문’)라고 묻는 시인은 존재와 동시에 종말로 나아가는 생물의 숙명 앞에서 “작은 사람”이 되어볼 것을 권한다. 세상을 둘러싼 비대한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고 작은 식당에 들어간 작은 사람이 되어 작은 세상만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찬찬히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사과 옆에 돌 옆에 감자 옆에 어둠이 하나씩”(‘시인의 말’) 드리우는 순간, 시인은 “밤에 혼자 있는 사과에 불 밝혀주는 방법/겨우 잠든 사과를 깨우지 않고 불을 꺼주는 방법”에 관해 “이제 조금 배웠다”(「□」)라고 털어놓는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깊은 잠에 들 수 있는 사과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것이다. 이렇듯 시인에게 시는 “내가 가진 하나의 성냥을 켜면, 그만큼의 빛이 생겨” “나는 하나만 있던 성냥을 잃게 되지만 우리라고 부르는 세상에는 꼭 필요한 곳에 정확한 빛이 생기는”(‘시인의 편지’) 것으로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 지탱해온 희망이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지윤의 말을 빌리면 “불시착한 존재들이 우연히 마주쳐 비워진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의 기쁨과 서로의 슬픔을 끌어안는 순간의 온기에 대하여” 말하는 “이 시집은 지금 이 시대에 대한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저항이자, 이원 시인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무참한 기쁨과 다정한 슬픔」)라고 할 수 있다.
“자꾸 편지 쓰고 싶어져요/당신은 뒤돌아보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시의 화자는 더는 만날 방법이 없는 “눈을 감고 있던 사람”을 떠올리며 그의 등에 대고 자꾸만 편지를 쓴다. 혹자는 ‘당신’을 2인칭 대명사, 화자와 친밀한 관계이거나 혹은 물리적으로 가닿을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일 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원의 시에서 ‘당신’은 화자와 청자, 발신인과 수신인을 특정하지 않는다.
외려 이때의 ‘당신’은 불특정 다수로 단일한 존재가 아닌 ‘당신들’이라는 복수로 호명되어 시적 화자와의 거리감을 확보한다. “닿으면 안 보일 거예요/닿기 전까지 당신이에요”[「무미류(無尾類)」]라는 고백은 끝끝내 가닿을 수 없는 당신과의 단절에서 오는 슬픔을 예견한다. 맨 처음 수록된 시 「당신들 모두가 나오는 꿈」에서 화자는 “나와 당신들 모두는 눈을 맞추느라 바빴다”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바쁜 꿈은 나쁘지 않았다”고, “접시를 든 당신들 모두는 좋았다”라고 말한다.
모두가 똑같이 “흰 셔츠를 입고 흰 접시를 든 모양이 되”어 그 뒤로 자꾸만 흰 접시가 쌓여가는데도 그들의 손을 끝끝내 서로 겹치지 않고 그림자만 하염없이 길어진다. 이렇듯 광막한 우주에서 단 한 명의 ‘당신’이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슬픔은 공동체 속에서 개개인이 가닿을 수 있는 지점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프랑스 철학자 클레르 마랭은 “우리는 결코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 위를 걷는 존재다”(『제자리에 있다는 것』, 에디투스, 2025)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인간은 자신이 위치한 ‘장소’와 스스로 자각하는 ‘실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존재이다. 이는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자기 안에 미지근한 온기만을 남겨두는 자연과 다르다.
“미니멀에는 드라마가 없는데”라고 읊조리면서도 언어 “스스로 자연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을까”(뒤표지 ‘시인의 산문’)라고 묻는 시인의 말에는 자신의 존재를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그 어떤 비약 없이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나아가려는 시적 지향이 담겨 있다. “투명에 모든 가능성을 두고 온 것처럼” “다 비치는 얇디얇은 실크 드레스 같”(「배양장」)은 존재 인식은 “떨어져도 떨어져도 계속 떨어지는. 몸은 점점 희미해지는데 영혼은 점점 또렷해지는”(「소속감」) 것으로 “껍질이 깎이고 끊어지지 않고 계속 속살이 깎이면/그러다 끝이 나오면/처음부터 처음까지/펄쩍펄쩍 뛰는 행렬”(「감자 깎기」)에 가깝다.
현대사회에서 끊임없이 대체되고 과잉되기 마련인 자기 자신을 어찌하지 못한 채 헤매기 마련인 다른 인간 생물과 달리 극단적인 해체를 시도한 헬무트 랭은 “사정없이 잘라버려 존재할 몸도 제거해버린 사람. 존재하지 않기를 시도한 사람”으로 “실패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에 가깝고 성공의 관점에서 봐도 거의에 가까운” “인간의 형태를 미리 실측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이 추구하는 최소주의자의 미덕을 갖춘 그마저 자신이 유지해 온 고요 속에서 반드시 “바느질 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은 삶의 단서를 끊임없이 기록하기 마련인 생물의 처연함을 보여준다. “잠은 보여주지 않지만 죽음은 보여주었”(「누가 죽음을 뜨개질 하는가」)던 한 마리 새처럼, 무언가를 “야금야금 씹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떤 밤에 곰이 찾아왔다」)던 곰처럼 모든 생물은 살아 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장소를 이동하고, 자꾸만 조금씩 슬퍼진다.
그렇다면 시인이라는 생물은 어떠한가. 시인은 자신과 같은 종족의 슬픔 곁에 서서 동물과 무생물에게 미지근한 손을 내미는 존재로, 스스로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기를 거부한 채 지구의 슬픔을 담아내는 배양장이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슬픔의 언어를 골라내어 삶에 꼭 한 줄기 빛을 밝혀주는 시인의 목소리가 한 권 시집 안에 담겨 있다.
“나와 산양의 동그란 눈만 별이에요. 적막하고 우아한 심정이 돼요”/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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