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허련이 아우의 죽음이후 식구들에 의지하며 전주에서 살던 기록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국립광주박물관이 펴낸 박동춘 기증 ‘초의선사 유묵 번역집4’을 통해서이다.
한벽당은 '옥같이 맑은 물이 차갑게 흐른다'는 의미로, 완산8경 중 하나인 '한벽청연(寒碧晴煙)'의 배경이 된 곳으로, 조선 후기 명필과 시인들의 발자취가 깃든 곳이다.
초의선사가 '등한벽당(登寒碧堂)'이란 시를 지었으니 한벽당을 방문한 것이리라.
‘시골 사람 옷차림으로 물가의 정자에 다다르니
이곳은 옛날 왕이 태어난 곳이라 하지.
고요한 계곡 새소리 은근하고
맑은 계곡물에 비친 나무 그림자 그윽하기도 하여라.
바쁜 장사치는 저문 길을 재촉하고
쫙쫙 내린 비에 씻긴 산뜻한 기운,
정말로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
누각에 올랐으나 어찌 노래하랴’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 )는 조선 후기의 선승(禪僧)이다.
△ 최성간(崔性侃)의 간찰
1845년(헌종 11) 4월 27일에 최성간이 전주에서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이다. 1842년(헌종 8)에 전하게 지내다 작별한 후 소식이 없어 궁금하던 차에 작년 9월 편지를 지금 받고 무척 기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초의선사가 편지에서 바다 건너 제주에 다녀오느라 소식을 전하지 못한 사정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무사히 다녀온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며, 그동안 초의선사가 있는 남쪽을 바라보며 그리워했던 마음을 전하고 있다. 편지와 함께 보내준 차 2포에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
[초의께서 계시는 암자에 회신함 완남)에서 보내는 답장]
임인년(1842) 겨울에 서로 친하게 지낸 것이 마치 오랜 친구와 같았습니다. 혹 함께 자며 나눈 정의(情誼)가 범상하지 않았는데, 이별한 후 소식을 듣지 못해 늘 서글프고 그리웠습니다. 지금 작년 9월에 보내주신 편지를 받아 두 번 세 번 거듭 읽으니 편지지에서 보풀이 일어날 정도입니다. 그 사이 겨울을 보내고 봄을 지내면서 기거하시는 모든 상황들이 매우 좋으심을 알게 되어 우러러 간절한 제 마음에 위로되고 그립습니다.저는 그동안 겨우 몸을 보존하며 별 탈이 없으니 이것이 다행이고 다행입니다. 다만 멀리 큰 바다를 건너 무사히 다녀오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기쁨과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매양 잊지 못하는 마음에 남쪽을 향해 바라본 것이 몇 차례인지 모릅니다. 소서(素書)가 잘 왔으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보내주신 차 2포는 잘 받았습니다. 무척 감사합니다. 마침 인편이 바쁘다고 하여, 잠시 이렇게 쓰고 이만 줄입니다. 을사년(1845) 4월 27일 최성간이 절하고 답장합니다.
*완남(完南): 전주를 지칭한다. 『경제유표』 권3, 7상 군현분예(郡縣分隷)에 따르면, 전라도의 노령 이북은 완남성(完南城), 노령 이남은 무남성(武南城)에 곧였으며, 완남성은 전주부 성안에 있고 전주, 용주(龍州), 순주(淳州) 등 3주, 6군, 18현을 관할한다고 하였다.
*소서(素書): 흰 비단에 쓴 글씨 또는 한(漢) 황석공(黃石公)이 쓴 병서(兵書)의 제목이기도 한데, 정확히 알 수 없다.
최성간(崔性侃, 1777~1820)의 본관은 전주, 처는 김해김씨이다.
△ 허련(許鍊)의 1860년 간찰
1860년(철종 11) 7월 22일에 전주에 있던 허련이 일지암에 있는 초의선사에게 보낸 간찰이다. 객지에서 조카와 아우 허전(許塡)이 연달아 세상을 떠난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운 심정을 토로하며 돌아갈 계획이 요원한 자신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그 해 허련은 아우 허질(許質)의 일로 전주에 갔는데, 조카와 아우가 사망한 이후 아우 식구들에 의지하며 전주에서 눌러살게 된다
[일로향실의 시동에게전주 객지에서 편지 올림]
무더위가 다하고 서늘한 바람이 점점 불어옵니다. 삼가 여쭈오니 이때에 선사께서는 편히 잘 지내십니까? 여름을 지내면서 건강에 손상은 없습니까? 그리워 마지않습니다. 저는 업보 바다의 풍파 속에 있는 외로운 배의 신세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끝내 헤아릴 수 없는 화를 당했습니다. 조카가 먼저 죽고 아우가 뒤이어 사망하여 객지에서 초혼招魂하니 어찌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차라리 죽고 싶지만 간신히 버티며 여기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진도에 돌아갈 계획은 이로부터 묘연합니다. 선사께서 계시는 계곡의 사찰과 달빛 아래 선방에 생각이 미치면 마음에 걸리고 염려되는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마침 운곡(雲谷)이 지나가다 들러 만나게 되어 바쁜 가운데 틈을 내어 대강 씁니다. 예를 갖추지 않습니다. 경신년 7월 22일 허련이 합장합니다.
*운곡(雲谷)은 다산 정약용의 제자이며 다산계(茶山契)의 회원인 운곡 이강회(李綱會, 1789~?)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허련(許鍊)의 1865년 간찰
1865년 4월 29일에 허련이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이다. 당시 허련은 전주 동쪽 관선교(觀仙橋)에 살고 있었는데, 사촌아우가 임피의 나포(羅浦)에서 해남으로 돌아가는 편에 편지를 맡겨 보냈다. 병든 아이가 점차 회복되는 중에 경계를 늦출 수 없다는 근황을 전하며, 김정일(金正一 )편에 보낸 자축(玆丑)이 잘 도착했는지, 그리고 십육나한도를 빌리고 싶다는 말을 전했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허련은 53세 때인 1860년에 전주로 거처를 옮기고 1861년 가족들을 서울에서 데리고 내려와 살았다. 1862년에는 장남 허은(許誾)도 가족을 데리고 합류했는데, 그는 3년 동안 병석에 있다가 1865년 5월 16일에 사망했다. 편지에서 언급한 병든 아이는 장남 허은을 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의대사의 선탑(禪榻)에 선교에 머무는 나그네]
온갖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꾀꼬리 떼들 모두 나오는 이때에 그리움이 더욱 간절합니다. 삼가 여쭈오니, 초여름 날씨에 불법의 기쁨(法喜)과 맑은 정취는 어떠하십니까? 사찰은 모두 별고 없으시지요. 그리워하며 축원합니다. 저는 쇠락한 신세(濩落)가 갈수록 괴롭고 곤궁합니다. 운수(運數, 命宮)가 너무 박함을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오직 병든 아이가 조금씩 회복될 가망이 있어서 기쁜 마음을 비할 데가 없습니다. 다만 오히려 '병이 조금 나았을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가 있어서 옆에 있을 수 없는 것이 걱정일 뿐입니다.일전에 김정일(金正一)이 우연히 지나다가 들렀습니다. 반갑게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회포를 다 풀지 못했는데, 몹시 바빴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축(玆丑)을 가지고 갔는데, 과연 바로 전달했습니까? 또한 십육나한도를 빌리고 싶다는 것도 상세히 언급했습니까? 그때 편지로 하지 못하고 구두로만 부탁했는데, 아직까지도 아쉬운 마음입니다. 종제(從弟)가 나포(羅浦)에서 돌아가는데, 그가 가는 편에 편지 한 통 보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이 편지를 직접 가지고 가서 드리고 저의 사정을 상세히 말할 것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을축년(1865) 4월 29일 허련이 합장합니다.
법희(法喜)는 불법에 기쁘다는 뜻이다. ‘유마경(維摩經)’ 제8장 불도품(佛道品) 4, 유마힐게송(維摩詰偈頌)에 '법희를 아내로 삼고 자비를 딸로 삼는다(法喜以爲妻 慈悲心爲女)'는 구절이 있다.
확락(濩落)은 두보(杜甫)의 시에 '문득 쇠락해져 뛰어내려 고단함을 딛게 여기네(居然成灑落 盲自甘契闊)'라는 구절이 있다.(《두소릉시집상 杜少陵詩集》 권4, 자경부봉선현영회 自京赴奉先縣詠懷)
명궁(命宮)은 12궁의 하나로 수명(壽命)에 관한 운수를 보는 별자리이다.
나포(羅浦): 전라북도 군산시의 나포면 나포리에 있는 나루터이다. 1720년(숙종 46) 전라정시에서 흉년에 대비하여 공주와 연기의 접경지역에 창고를 설치했는데, 1722년에 임피로 창고를 옮기고 별장을 두어 관리했다.
합장: 차수(叉手)는 단정하고 공손하게 두 손을 마주 잡는 예절이다.
전주 관선교(觀仙橋)는 현재 전주천을 가로지르는 주요 교량이 아니라, 과거 전주 부성 동쪽에 흘렀던 관선교천(노송천) 위에 있었던 옛 다리 및 지명을 의미한다. 전주시 남노송동 일대에 있던 관선교(觀仙橋)는 '신선(仙)을 바라보는(觀) 다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과거 기린봉 자락에서 내려오는 맑은 개천(관선교천)이 흐르던 곳으로, 빼어난 경치를 감상하며 신선과 같은 풍류를 즐기던 다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천이 복개되면서 현재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일대의 옛 지명과 기린로 주변의 거리 이름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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