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지난 6월25일(토) 아침 전북 정읍의 장애인 거주시설 나눔빌에 거주하며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 8명과 인솔교사 3명이 이른 아침 정읍역에서 KTX에 몸을 실었다. 이들의 행선지는 서울역을 거쳐 다다라야 하는 경기 양평. 결코 가깝지 않은 길을 나선 이들의 여정은 단순한 나들이나 일회성 문화 체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청년들이 ‘자립’이라는 삶의 거대한 화두를 품고, 문화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떠난 치열한 탐색의 길이었다.
양평에서 만난 서은혜 작가와의 조우는 청년들에게 깊은 이정표를 제시했다.
장애인으로서 당당히 문화예술계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작가와의 대화는 청년들에게 '장애를 가진 삶'과 '자립', 그리고 '예술'이 어떻게 하나의 유기적인 삶으로 완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였다.
예술은 이들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독립된 주체로서 설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자립의 무기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정에서 우리 사회가 가장 무겁게 받아 안아야 할 화두는 따로 있었다.
바로 서은혜 작가의 어머니이자, 오랜 시간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의 현장을 지켜온 선구자가 던진 한마디였다.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은 결국 ‘기다림’이다."
이 묵직한 한마디는 효율성과 속도, 즉각적인 성과만을 쫓는 현대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과 장애인 복지 정책의 해묵은 민낯을 정면으로 찌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모든 것에 '속도전'을 요구한다.
투입 대비 산출(ROI)을 따지고, 몇 개월짜리 예산 지원 사업의 결과물로 몇 점의 작품이 나왔는지, 몇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는지를 계량화하여 성과를 평가한다. 그러나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은 결코 그런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다.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붓 한 자루를 쥐는 일, 선 하나를 긋는 일, 자신의 내면에 고인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일조차, 장애 청년들에게는 수개월, 때로는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다림’은 방치나 소극적인 관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발달장애나 신체장애를 가진 학습자가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의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지치지 않고 그 곁을 지키며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 가장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교육적 행위다.
서 작가의 어머니가 평생을 통해 체득했을 이 깨달음은, 장애인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시혜와 동정'에서 '존중과 인내'로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이뤄내야 함을 웅변하고 있다.
나눔빌 청년들이 정읍에서 양평까지 먼 길을 달렸듯, 장애인들이 자립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늘 예산의 한계와 단기 성과주의에 가로막혀 '기다려줄 여유'를 갖지 못한다. 매년 바뀌는 보조금 사업의 구조 속에서 강사들은 고용 불안에 시도 때도 없이 바뀌고, 교육의 연속성은 뚝뚝 끊기기 일쑤다. 장애 청년이 예술가로서, 혹은 사회적 주체로서 온전히 자립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실패하고, 머뭇거리고, 다시 일어서는 모든 시간을 묵묵히 받쳐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정읍역을 떠나던 청년들의 발걸음은 자립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었다. 그리고 양평에서 얻어온 '기다림'이라는 해답은 이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투자는 단기적인 복지 비용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적 품격과 다양성을 넓히는 가장 가치 있는 미래 투자다.
속도의 사회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눔빌의 여덟 청년이 우리에게 던진 가장 묵직한 질문이자, 진정한 포용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 이제 국가와 지역 사회가 대답해야 할 때다. 그들이 자신만의 빛깔로 꽃을 피울 때까지, 우리는 기꺼이, 그리고 끝까지 기다려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문성하(희망을 노래하는사람들 대표/선교교회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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