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잘하고 나서 시작하려 했다면, 아마 지금까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봐줄 누군가 있을까." 유튜브에 첫 영상을 올리던 날, 나는 그 질문 하나를 붙든 채로도 결국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일단 꾸준히 올리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광고 카피 한 줄을 믿고, 졸린 눈을 비비며 밤늦게 촬영했고, 몸이 아파 목소리가 꽉 잠긴 날에도 마이크 앞에 앉았다. 편집도 서툴고, 말투도 어색했다. 그런데도 서툰 정보와 상식을 찾아 읽어 내려가던 나를, 어느 순간부터 지켜봐 주는 시청자가 하나둘 생겼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멈추지 않아서 생긴 인연이었다.
공모전을 준비하며는 오래된 노트를 다시 펼쳤다. 흠이라고만 여겼던 지난날의 기록들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애써 밀어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꺼내어 다시 읽고 정리하다 보니, 그것은 흠이 아니라 서툰 생활시였다. 투박한 문장 속에 그때의 냄새와 온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타인의 공감을 얻지 못해도 괜찮았다. 과거를 다시 들여다보는 그 시간 자체가, 지금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해주었다.
첫 책을 독립출판으로 세상에 내놓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목차 한 줄을 빼먹었고, 오타는 여덟 개나 나왔다. 밤늦게까지 책마다 정오표 스티커를 하나하나 붙였다. 누군가는 "책 두께에 비해 비싸다"고도 했다. 그 말이 며칠 동안 마음에 걸렸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시간을 담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쉽게 지워지는 마음은 아니었다. 부끄러움에 사인을 작게 그어 넣었더니, 곁에 있던 멘토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사인도 꽉 차게 해야 더 큰 대작가가 되지." 그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서투름을 감추지 말고, 당당히 밀고 나가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수출 일정이 임박한 동료 곁에서 늦은 밤까지 국수를 함께 포장했다. 내가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 주고 싶어서였다. 완벽한 도움이 아니어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힘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을 그날 다시 배웠다.
돌아보면 지난 몇 달은 온통 서투름의 연속이었다. 영상도, 글도, 책도, 사람 곁에 서는 일도 나는 여전히 서툴다.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서툴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서투름은 멈출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계속할 이유라는 것을. 잘하는 날을 기다리다 보면 시작할 수 있는 날은 영영 오지 않는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서툰 그대로 세상에 내놓는 용기가 결국 나를 조금씩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서툴러도 계속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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