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전북은 오래전부터 먹의 문화를 품어온 지역이다. 서예와 문인화, 수묵, 그리고 한지까지. 서로 다른 장르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먹이 있었다. 먹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였고, 사유를 담아내는 방식이었으며, 전북 문화의 깊이를 만들어 온 예술의 언어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전통을 얼마나 오래 지켜왔는가가 아니다. 먹이 지금 어디를 향해 흐르고 있는가, 그리고 그 흐름을 우리는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오늘의 전북 수묵은 더 이상 전통적인 화면 안에 머물지 않는다. 먹은 새로운 조형 언어로 확장되고 있으며, 전통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간다.
그 변화는 지역 작가들의 작업에서도 확인된다. 여태명은 서예의 필획과 문자성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확장하며, 먹이 글씨를 넘어 공간과 사유를 담는 예술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수정은 한지와 먹을 바탕으로 화면을 새롭게 구성하며, 절제된 색감과 유머를 더해 먹을 자유로운 표현의 언어로 확장한다.
두 작가의 작업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된 지점을 가진다. 전통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다는 점이다. 수묵은 과거를 보존하는 예술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변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는 현재형의 예술이다.
전북은 오랜 시간 먹의 문화를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먹 문화를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내고 꾸준히 조명해 온 중요한 플랫폼이었다. 비엔날레를 통해 전북은 먹을 하나의 문화 자산으로 인식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명하는 일과 축적하는 일은 다르다. 비엔날레가 끝나면 도록은 남지만, 그 작가가 이후 어떤 작업을 이어가는지, 그 전시가 어떤 이야기를 남겼는지는 다음 세대가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비엔날레가 먹 문화를 알리고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그 흐름을 지속적으로 쌓아가는 구조다. 전시가 열릴 때마다 담론이 만들어지고, 작가의 작업이 체계적으로 기록되며, 그 기록이 다음 전시와 연구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 말이다.
여전히 부족한 것은 바로 이 축적의 구조다. 뛰어난 작가들은 있지만 그들의 작업을 지속해서 연구하고 기록하는 비평은 충분하지 않다. 전시는 열리지만, 담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작품은 남지만, 체계적인 아카이브는 부족하다. 전시는 끝나도 기록은 이어져야 하며, 작가는 개인의 성과를 넘어 지역의 문화 자산으로 축적되어야 한다. 문화는 행사의 횟수가 아니라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깊이에서 성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전시를 여는 일이 아니다. 작가와 기획자, 연구자와 교육 현장, 시민과 미술관을 연결하는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시민이 수묵을 낯선 전통예술이 아니라 오늘의 삶 속 문화로 경험하고, 지역에서 축적된 경험이 다시 세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앞으로 공공이 해야 할 역할이다.
전북은 무엇을 축적해야 하는가.
전시의 숫자가 아니라 시간을, 행사의 규모가 아니라 담론을, 작품만이 아니라 사람과 기록을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축적은 과거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먹은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품고 흘러온 예술의 언어다. 이제 그 언어가 전북의 과거를 기억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예술을 이어주는 미래의 언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선남 재단법인 청목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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