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마한 최대급 분구묘(墳丘墓)인 고창 봉덕리 고분군 3호분에서 남북으로 나눠 서로 다른 토목 공법을 결합한 축조 기술이 국내 처음으로 확인됐다. 북쪽엔 흙자루와 점토 블록으로 격자망을 짜고, 남쪽에는 성벽처럼 흙자루 벽을 수직으로 쌓아 거대한 분구를 조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유산청과 고창군은 '고창 봉덕리 고분군 3호분' 3차 발굴조사에서 토낭 격자망과 성벽 축조 공법이 융합된 초대형 고분 축조 기술을 국내 최초로 확인했다고 14일 밝혔다.
봉덕리 고분군 3호분은 우리나라 마한 분구묘(墳丘墓, 흙 등을 쌓아 올린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마한의 무덤양식)중에는 가장 크고, 분구의 축조는 모두 2차례에 걸쳐 높게 쌓은 것으로 파악됐다.
3호분은 마한 54개 소국 가운데 고창 일대에 있던 모로비리국의 전통을 이은 세력의 위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남북 78m, 동서 68m, 높이 8.8m 규모로 마한 분구묘 가운데 최대급이며, 고도의 토목 기술을 담고 있다. 선행의 성토층에서 기원후 3세기 중·후반대의 매장시설(통나무관, 목관)과 토기 등이 출토됐다.
이후의 5세기 중·후반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5m 내외로 높게 쌓아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는 영산강유역권의 마한 분구묘와 유사한 분구 축조 양상이다.
이번 3차 조사에서는 북쪽 구간에서 토제를 두른 뒤 토낭과 점토블록으로 방형 격자망을 짜고 흙을 한 층씩 채운 '격자망 구획 공법'을 확인했다. 남쪽 구간에서는 성벽 체성부를 쌓듯 토낭벽을 수직으로 여러 겹 올린 뒤 사면을 성토한 흔적을 찾았다.
서로 다른 공정과 작업 단위가 결합된 방식으로, 당시 고창 지배 세력이 대규모 노동력을 조직적으로 동원했음을 보여준다. 3호분 중심은 매장 주체부(석실묘·석곽묘 등) 없이 분구만 축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단순 무덤이 아니라 고분군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의례 공간이었다는 의미다. 분정 중앙부에서 나온 발형기대 조각과 남사면 가장자리에서 발견된 토기 매납 흔적도 축조 과정에 제의 행위가 지속됐음을 뒷받침한다.
2023년 1차, 2024년 2차 조사에서는 고분 사면부 성토 양상과 외곽 시설을 살폈다.
모두 4기의 분구묘(墳丘墓)로 이뤄져 있는 봉덕리 고분군은 지난 2009년 1호분 발굴조사에서 금동신발(보물)과 함께 중국제 청자, 청동잔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돼 고분군을 축조한 세력이 당시 고창 지역의 최상위 계층임이 확인, 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봉덕리 3호분은 현재까지 알려진 마한의 분구묘 중 가장 큰 규모로 두 차례에 걸쳐 분구를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출토된 이중구연호나 양이부호, 장경호 등이 출토됐다.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고창 봉덕리 고분군은 마한 모로비리국의 실체를 입증하는 핵심 유적으로 국가적 인정을 받아 2026년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에 선정됐다.
고창군은 오는 2028년까지 국비 50%를 포함한 최대 14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봉덕리 고분군과 인접 유적지를 중심으로 고대 마한시대의 역사문화 환경을 체계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봉덕리 고분군 3·4호분과 봉덕 유적 일원의 유물산포지는 마한 중심세력(모로비리국)의 실체를 입증하는 핵심 군집 유적으로 폰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곳이다.
마한에서 백제로 이어지는 전환기의 역사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내륙과 해안을 잇는 교류의 흔적과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 맥락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는 공간이다
2009년 이뤄진 고창 봉덕리 1호분 조사에선 돌방무덤(석실) 5기, 옹관 2기 등이 발견됐었다. 이 중 4호 돌방무덤에서는 금동신발(보물)을 비롯, 중국제청자, 죽엽형 은제머리장식 등 마한 모로비리국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 위세품 등이 출토, 2015년 사적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날 오후 1시 발굴 현장인 고창군 아산면 중월리 산2-1 지역을 공개됐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성과를 '고창 봉덕리 고분군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에 반영하고, 역사문화권 중요유적 발굴조사 국고보조사업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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