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이 만난사람> "장애는 제 삶의 걸림돌이 아니라 또 다른 디딤돌이었습니다"

전북 무형문화재 이정희 자수장, 바늘 끝으로 수놓은 희망의 인생

공유
기사 대표 이미지

[새전북신문] "한 땀 한 땀 바늘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꽃이 피고 봉황이 날아오릅니다. 제 인생도 그랬습니다. 힘들고 아픈 시간들이 있었지만 결국 아름다운 무늬가 되었습니다."



전북 정읍시 수성동에서 전통 자수공방 '예다움'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희 자수장의 말이다.

그는 장애인 최초로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자수장 보유자로 인정받으며 한국 전통자수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고난과 좌절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이정희자수장에게 그의 분신과 같은 아들인 이용주군(호남고2)이 제자이자 전승자로 자수의 진수를 이어받고 있어 안도하고 있다.



그녀의 삶은 처음부터 꽃길이 아니었다.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수많은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최근 정읍 예다움을 찾아

장애인으로서는 전국 최초로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자수장 보유자로 지정된 이정희 자수장(61)을 만났다.

장애인미술대전 대상 삶과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고 있는 이정희 자수장의 삶과 예술, 그리고 장애를 넘어선 희망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남들처럼 뛰어놀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정희 자수장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친구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함께 할 수 없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당시에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지금보다 훨씬 부족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장애인이라는 시선이 먼저 따라왔지요. 어린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만난 것이 자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늘과 실로 아름다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점점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이 자수장은 자수를 '인내의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수많은 색실과 금실 그리고 수천 번의 바늘질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작은 실 한 가닥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완성합니다."

40여 년 동안 전통자수의 길을 걸어온 그는 궁중자수와 불교자수, 민속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선보이며 명성을 쌓아왔다. 특히 봉황, 십장생, 모란 등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들은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몇 달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큰 작품은 1년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무형문화재 자수장으로 인정받은 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쁘기도 했지만 책임감이 더 컸습니다.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특히 장애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데 대해서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합니다."

실제로 그는 장애인 예술가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실력보다 장애를 먼저 보는 경우가 아직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장애가 아니라 실력과 열정이어야 합니다."

그는 장애가 오히려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장애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려움이 있었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더 많이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정희 자수장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감사'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감사할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저를 믿어준 가족이 있었고, 스승이 있었고, 작품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그는 후배 장애인들에게도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장애는 가능성을 막는 벽이 아닙니다. 때로는 다른 길을 보여주는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감을 잃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자신만의 속도로 가면 됩니다. 꽃도 종류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듯 사람도 각자의 시간이 있습니다."

현재 이 자수장의 또 다른 꿈은 전통자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다.

"기술은 사람을 통해 이어집니다.

아들이 가업으로 전승해주는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젊은 세대가 전통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아들과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의 인생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본다면 어떤 그림을 수놓아 오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이정희 자수장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처음에는 눈물과 고통의 실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실들이 희망과 사랑의 무늬가 되어 있더군요. 아직 작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더 아름다운 그림을 수놓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예다움 공방에는 형형색색의 실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실들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었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한 장인의 땀과 인내, 그리고 희망이 담긴 삶의 기록이었다.

이정희 자수장은 오늘도 조용히 바늘을 움직인다. 한 땀 한 땀 이어지는 그의 손끝에서 전통문화가 살아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피어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비단 위에만 새겨지는 것이 아니다. 장애를 넘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도 아름다운 자수처럼 깊이 새겨지고 있다.

/서울=정종인기자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